손을 깨끗이 씻고 수건에 물기를 닦습니다. 비누로 거품을 내어 정말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깨끗했던 수건이 누렇게
변합니다. 그 수건도 비누를 써서 깨끗이 씻어 말려야 또 손을 닦을 수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분명히 깨끗이 씻은 손을 닦았는데 왜
수건이 더러워지는 것일까요?
비누를 담아 쓰는 비누곽을 봅니다. 더러워진 손을 닦기 위한 비누를 담는
그릇인데 지저분합니다. 손을 닦기 위해 비누를 쓸 뿐 그 비누곽을 잘 씻지는 않습니다. 비누곽이 더러우면 비누도 더럽게 여겨서 비누를 만지기
싫어져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항상 더러워질 수 있는 손과 그 손을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도와주는 비누의 주변은
무심하게 여기고 삽니다. 손은 내 것이고 비누는 손을 씻는데 도와주는 것이기에 가깝고 한 단계를 지나면 그렇게 소홀해지는
모양입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내 집과 우리 동네, 내 몸과 내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참아내기 어려워 그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이 아파하면 좀 참으라며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내가 감기에 걸리는 것과 다른 이가 큰 병에 걸리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더
마음이 갈까요?
내 집이 조금만
더러워지면 즉시 쓸고 닦습니다. 우리 동네가 더러우면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가 치우겠지 하고 외면합니다. 정해진 쓰레기봉투에 담지 않으면
청소차가 수거해가지 않는데 길 한 켠에는 비닐봉투에 담겨진 쓰레기가 쌓여있습니다. 잘 묶지도 않아서 쓰레기가 길에
흩어져있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머리를 잘 감고는 잘 만지고 얼굴도 정성들여 씻고 비싼 화장품을 바릅니다. 옷장에 걸려있는 옷을
가려서 한껏 멋을 부립니다. 입을 옷이 없느니 유행이 지났느니 하고는 새 옷을 살 궁리를 합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요즘 들어 부쩍 불평을
해댔고 짜증도 많이 부리지는 않았습니까? 작년보다 얼굴을 찌푸리는 회 수가 늘어 신경질장이로 변하지는
않았습니까? 마음을 제대로 돌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비누를 담아도 비누곽을 씻지 않으면 더러워집니다. 아무리 깨끗이 손을
씻어도 수건에는 더러움이 묻습니다. 비누와 손, 비누곽과 수건이 다같이 주체와 대상으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지저분한 곽에 담긴 비누와
더러워진 수건에 닦는 손을 생각해보면 비누와 손만을 소중하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몸만을 나라고 여기고, 내 집 안만 내
거처라 여기며 나만 편하면 그만 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다스리지 못한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하고 내가 사는 동네가 내 집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며 아무도 나를 가까이 하지 않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깨끗히 씻은 비누곽에 비누를 담으십시오.
아무리 손을 잘 씻어도 때를 타는 수건을 살피십시오. 우리 동네가 살기 좋으면 내 집도 편안해집니다. 나를 알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때 누구나 알 수 있는 내가 존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면 내가 아플 때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더 큰 내가 될 수 있는 길입니다. 깨달은 이가 우주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얘기에서 나 밖에 모르는 이는 진리에서 그만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다른 이들도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크고 작은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진정한 삶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행복한 삶을 사신
분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찾고자 하는 행복이란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 찾지 않은 것을 부처님께 엎드려 구하고자 있다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일 겁니다.
부처님은 목이 마른 이에게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는 음료수나 숭늉,
생수를 가려가면서 먹을 궁리나 하고 있지요.
비가 잠시 그친 지금 더위에 묻어오는 습기 때문에 무덥습니다. 그저 여름날에 마른
더위이거나 젖은 더위의 차이일 뿐이니 짜증내지 말고 여름이니까 그렇다 여길 일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름이 성盛하면 가을이 그 안에 잦아들기
마련입니다. 입추, 처서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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