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단독주택 용소정 3 - 음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집

무설자 2024. 8. 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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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이나 한옥에서 살아보지 않은 건 같은 처지이다. 그런데 만약 한옥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은 금세 적응해서 한 달쯤이야 조금 불편해도 원래 살았던 사람 같이 생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은 이색 생활 체험 같이 한 달 살기는 상당히 힘들게 지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보지도 않은 한옥에 금세 적응할 수 있을까? 그건 조상님들께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의식적으로는 모든 게 생소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특히 겨울에 온돌방에서는 침대와 다르게 꿀잠에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음양이 어우러지는 집

 

낮과 밤, 주인과 손님, 외부와 내부, 배후와 조망 등의 음과 양의 조화가 용소정 설계 개념의 해결 코드이다. 양으로 본 것은 집 밖의 공간, 거실채, 전면부, 안으로 향하는 벽, 손님이고, 음으로 본 것은 내정, 침실채, 후면부, 바깥으로 향하는 벽, 주인이다.

 

양으로는 닫혀있고 음으로는 열려있다. '양'쪽으로는 닫고 '음'쪽으로는 열면서 중화시킨다. 음과 양이 병립하며 공존하는 공간 구성은 삶에 균형을 맞춰준다. 용소정의 주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내정은 양인 낮에는 안이 어둡고 음인 밤에는 불이 켜지면 밝아지면서 음양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낮에는 눈에 보이는 집의 모습으로 대지에 정착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내정의 조명으로 시선을 잡는다.

 

 

 

양의 비중이 높은 집인 아파트는 들뜬 분위기가 가족을 부유(浮遊)하게 한다. 식구들을 집에 묶어두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돌게 하는 원인이 가장 중심 공간을 지나치게 양쪽으로 치우치게 한 것이 아닐까? 한 벽면이 온통 유리벽인 아이들 방은 지내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만약 그 방이 몇십 층에 있다면 조망을 즐길 수 있어서 좋은 방일까?

 

한옥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나오는 방을 떠올려보자. 방도 작지만 창문은 창호지로 가려져 밖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방에 있으면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해진다. 그 방에서 생활하면 마음은 평온해질 것은 자명하다.

 

내정은 주야로 음과 양이 바뀌는 공간

 

용소정은 대지 영역에서 보면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밤이 되어 어둠이 집을 에워싸면 창 밖은 암흑 천지가 된다. 어두운 밤에 비바람까지 치는 날이면 집안은 두려움으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북쪽으로 열려 있는 중정 느낌의 내정은 밤에 시선을 두는 곳이다. 밤이면 불 켜진 내정은 집 밖의 어떤 상황도 불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내정이 있어 용소정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용소정 배치도
용소정 평면도
용소정 모형

 

 

낮에는 내정이 지붕 없는 내부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내정에서  연기나 냄새가 나는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좋겠다. 달 밝은 가을밤에는 손님과 함께 술자리나 찻자리를 가져도 좋겠다. 

 

혼자 살아도 두렵지 않고, 손님이 와서 함께 지내도 좋은 분위기에 내정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대지 영역이 넓은 집이어서 이 내정이 없으면 고요함이 지나쳐 고독한 분위기가 되지 않았을까? 내정은 낮에는 존재감이 없다시피 하지만 밤이 되면 빛나는 공간이 된다.  

 

실현되지 못하고 만 집짓기

 

교수님은 건축허가가 이미 나 있어서 땅을 매입했었다. 그렇지만 도시구역으로 편입되기 이전에 내었던 건축허가는 도시구역으로 편입되면서 허가요건에 맞지 않게 되었다. 군청에서 아직 취소되지 않은 허가가 이미 사문서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 대지로 들어오는 진입도로의 지목이 도가 아닌 게 문제였다. 도로가 없는 땅은 맹지라서 도시계획구역에서는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다. 결국 이 땅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맹지이니 설계 작업도 모형으로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교수님은 원래 있던 오래된 집을 고쳐서 살고 있으시다. 나와 같은 집, 나라고 보여주고 싶은 집, 내 삶의 결실과 같은 집을 갖고 싶었던 교수님의 바람을 담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고 말았다.

 

 

 


 

이 집이 설계도로 박제되어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간다. 건축허가를 낼 수 없다는 군청의 선고를 받은 지 벌써 5년이 흘렀고 이제는 교수님의 연세로 보아 집을 짓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교수님이야말로 괜찮은 집에 사실 수 있는 온전한 자격을 갖춘 분이었기에 주인을 찾지 못한 이 작업의 결과가 너무 아쉽다. 

 

 

 

설계자 김정관 건축사는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단독주택 이입재로 부산다운건축상, 명지동 상가주택 BALCONY HOUSE로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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