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단독주택 용소정 2 - 양동마을 관가정에서 설계 개념을 얻다

무설자 2024. 8. 27. 13:54
728x90

단독주택은 참 귀한 프로젝트이지만 다행히 작업할 기회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단독주택만 전문으로 작업해서는 사무실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건축사로써 마음 가짐을 제대로 유지하는 데는 이만한 프로젝트가 드물다. 옛집을 가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축사의 직업적 정체성을 다지게 된다.

 

근대를 겪지 못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고 현대 건축으로 바로 들어간 게 우리나라 건축물의 시대적 상황이다. 한옥이라는 옛집에서 이어지는 과정 없이 아파트에서 살게 되다 보니 이 시대 단독주택은 족보 없는 집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닮은 평면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런데 공중에 떠 있는 박스에 갇힌 평면을 어떻게 땅을 딛고 사는 단독주택 평면으로 삼을 수 있을까?

 

집다운 집에 대해 생각하다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반촌(班村) 경주 양동마을에는 50여 채의 기와집이 있다. 집마다 그 집을 조영(造營)한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위치에 따라 다르게 짓기보다는 가풍에 따라 달리 지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풍(家風), 이 시대에 다시 되살려야 하는 의미이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만들어지고 나면 그 집은 다시 사람을 만들어간다. 집이 만들어가는 사람 사는 분위기란 무엇일까? 하드웨어로서의 집이 편리함이나 안락함으로 우리네 삶을 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할까?라는 소프트웨어가 식구들이 행복한 일상을 집에서 보낼 수 있어야 하겠다.

 

가풍에 따라 집을 조영하면 그 집이 가족들의 삶을 일구어 나간다. 그래서 제대로 만든 우리의 옛집을 잘 살펴보면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으며 집주인의 성품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주택은 얼마나 건축주와 식구들이 살아갈 일상을 의식하여 설계되었으며 또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용소정 모형, 오른쪽 채는 침실채이고 왼쪽은 거실채로 채 나눔 개념을 적용해서 손님이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의 죽음을 통해 텍스트가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얘기는 건축사의 만용을 포기해야만 그 집을 위한 텍스트가 완성된다는 말이다. 건축사가 제 집도 아니면서 작품에 대한 집착으로 설계에 임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이다.  의뢰자이자 사용자인 건축주의 집에 대한 바람을 무시하고 사진 잘 찍히는 집으로 남기는 경우를 이른다. 집은 건축가의 작품이기를 바랄까?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의 삶을 잘 담는 제대로 된 그릇이고 싶을까?

 

집이라는 그릇을 만드는 건축사의 처지와 그 그릇에 담기는 건축주 입장 사이에서 집을 만드는 고민은 시작된다. 사실은 두 입장 중 어느 하나를 고집한다는 것보다 우선순위의 문제일 것이다. 만드는 이의 입장이 우선된다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쓰는 처지에서 불만족스러움이 있을 것이고 반대되는 결과에서는 볼거리(?)가 적어질 것이다. 어떻든 그 둘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도(中道)의 묘수를 찾아야만 모순을 해결하는 솔로몬의 해법이 될 것이다.

 

대지에서 답을 찾는다

 

일단 집을 앉힐 자리에서는 주변에 다른 집은 한 채도 보이지 않는다. 밤이 되면 사방은 암흑천지가 되는 것이다. 200미터 정도만 가면 동네가 있지만 한쪽으로 들어앉은 대지의 특성상 밤이 되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대지의 뒤쪽으로는 암벽으로 막혀있고 전면 좌우로 트인 높은 자리에 오래된 집이 있다. 이 자리에가 오래된 집을 헐고 새집이 앉게 될 것이다. 대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아늑한 분위기가 풍수를 몰라도 명당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처지에서 보면 해가 지면 꼼짝없이 갇히는 상황이 된다.

 

 

밖으로 조망은 열리지만 전체 대지의 형국은 닫혀 있는 집터, 그래서 집은 안으로 안정이 되지만 열리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키워드를 던져 보았다. 안채는 중정으로만 열려있어 안정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사랑채는 벌판을 향해 정자처럼 활짝 열려있는 양동마을의 관가정에서 키워드의 해법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의 뿌리는 한옥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한옥의 얼개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 단독주택을 어떻게 지어야 족보가 분명한 집이 될 수 있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처음 작업했었던 단독주택 관해헌도 관가정에서 해법을 찾았고 건축주의 호평을 받았다.

 

관가정에서 빌려온 용소정의 얼개

 

안채의 정(靜)적인 분위기와 사랑채의 동(動)적 분위기를 결합한다. 정적 공간은 항상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거주자를 우선하는 공간이며 동적 공간은 움직임을 받아들여 방문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어울릴 수 있고, 주인은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으며 손님은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정적공간과 동적 공간이 병립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일상과 이벤트가 한 집에서 가능해졌다. 혼자 사니 사람이 그립다. 아파트는 가족도 객이 된다. 옛집은 안방, 건넌방 등으로 개별 실의 개념이기보다는 위치를 정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래서 방은 누구나 쓸 마다 공적인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귀한 손님이 오면 안방을 내어줄 정도였으니 손님에 대한 예우는 어떤 가족 구성원보다 우선이었다.

 

양동마을 관가정 배치 및 평면도
관가정 사랑채, 일 년 내내 손님이 찾아와도 안채에서 지내는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는 손님을 위한 배려는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는 늦은 시간까지 머무르기 어려우니 가족 개인의 손님을 청하기는 어렵다. 친척집을 방문해도 아파트에서는 하루를 묵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온 식구가 같이 앉아 밥을 먹기 위해서는 시간을 잡아야 하고 거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방이 둘러싸는 거실의 구조는 어쩌면 방이 거실을 쳐다보는 것 같고 거실이 방을 감시하는 것도 같다. 방과 거실은 대립의 구조이다.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집이 되어야 가족 구성원은 주인이 되고 손님이 찾을 수 있다. 교수님이 살 집은 혼자 지내게 되니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찾아오는 이가 머무르기 편해야 다시 찾을 것이고 또 더 많은 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사람이 그리우니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 집을 두 채로 나누는 채 나눔 개념을 설계 방향으로 잡았다. 침실을 중심으로 한 정적 기능의 채와 거실 주방을 담는 동적 기능의 채이다. 주인은 밤이 되면 쉬어야 하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손님은 밤을 새워 놀 수도 있는 기능으로 한옥의 안채와 사랑채 개념을 설계에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