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단독주택 용소정 1 - 나를 닮은 집으로 설계해주오

무설자 2024. 8. 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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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일까?

언제부터였을까? 정해진 박스 틀 속에 차곡차곡 우리의 삶을 구겨 넣는데 익숙해져 온 것이. 유행 따라 차를 바꾸듯 일 년을 살기도 하고, 십 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옮겨 사는데 익숙해져 버린 우리네 삶의 방식. 우리 집, 우리 동네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무슨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가 우리네 주거가 되어 버렸다.

 

집이냐?

아파트는 걷어버리면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텐트처럼 짐만 들어내면 아무런 미련 없이 옮겨갈 수 있다. 내 아이가 자라온 기억도, 이웃과 나눈 정도 옷에 묻은 먼지 털어내듯 툴툴 털어버리면 그만일까? 아무 미련 없이 주소 바꾸고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그런 삶을 사는 도시인의 내면은 외로운 기억 밖에 없다.

 

집이다.

나를 담고 식구들과 함께 살아갈 행복한 삶을 담아 내가 나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집이다. 담기만 하면 그만인 일회용 용기가 아니라 맛을 제대로 내줄 수 있는 그릇 같은 집이다. 된장국은 뚝배기에, 차는 다기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나의 삶도 그렇게 올바르게 담고 싶은 그런 집이 집이다.

 

 

내 집 하나 지어주오

 

정년을 몇 해 남기지 않은 때에 돌아가 살 수 있는 집을 준비하시는 모교의 공대학장을 지내셨던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평소 교수님과 파트너로 일을 함께 하며 신뢰를 쌓고 있던 친구에게 건축사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교수님은 친구에게 '자네처럼 믿을 수 있는 건축사'라는 전제를 하셨는데 친구는 주저 없이 나를 천거한 것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단독주택 중에 완공된 집과 실현되지 못했던 설계 자료를 교수님께 보여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자료를 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쾌히 의뢰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완공된 집 중에 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마침 대지와 멀지 않은 곳에 준공한 지 3년쯤 되었고 당호를 ‘양화당養和堂’으로 지었던 집이 있어 위치를 가르쳐 드렸다. 

 

현장을 처음 방문했던 날, 교수님은 양화당을 다녀오셨다고 하시며 내가 설계자로 정한 게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그 집도 마음에 들지만 양화당에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집 자랑을 하는지 사는 이가 그렇게 좋아한다면 틀림없다고 생각하셨단다. 건축사만큼 건축주가 마음에 들어 하는 집이라면 좋은 설계를 기대해도 될 것이라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후한 점수를 주신다.

 

대지에서

 

대지가 있는 기장군은 부산시의 자치구에서 구가 아닌 유일한 군으로서 아직 도시화가 덜 이루어진 전원도시이다. 대지는 산속에 들어앉은 동네에서도 길이 끝나는 곳에 숨어 있었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의 오솔길을 한참 돌아 언덕을 오르니 집터가 보였다. 산에 둘러싸여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안에서도 숲 밖에 보이지 않는 안락한 터였다.

 

아무리 타는 듯이 더운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용소천 상류가 대지 앞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길은 그 내를 다리로 이어 텃밭을 낀 대지에서 끝이 났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암벽으로 배후를 친 산을 뒤로하고, 개천이 흐르는 남서향으로 열려있는 쪽을 제외하고는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터라고 보기보다 작은 절이 들어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교수님은 대지에 있는 오래된 집으로 벌써 거처를 옮겨 텃밭에 채소를 가꾸며 이곳에서 지내고 계셨다. 앞산에서 땄다며 산딸기 주스를 내어 주셨다.

 

나는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

 

교수님은 평생을 학자로, 토목전문가로, 교육행정가로, 행정자문역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다. 곧 정년이 되는데 앞으로는 흙과 가까이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평생 연구한 결과도 정리하고 찾아오는 후학에게는 가르침과 함께 쉴 수 있는 공간도 나누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산으로 들어와 사는 건 바라지 않으니 거의 혼자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큰 집은 아니라도 교수님의 현재의 모습이 집으로 표현되었으면 한다는 화두를 주신다. 혼자 살지만 누가 오더라도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집이길 바란다고 하신다. 외관은 크지 않은 집이지만 당당한 품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혼자 살아야 하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아 묵어갈 수도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크지 않은 집이지만 집주인의 격이 드러날 수 있는 외관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은 교수로 살아온 삶이 집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으시다는 걸 느꼈다. 은퇴한 이후에 평범한 노인으로 지내는 동료 교수님들의 모습으로 보면 회한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조심스럽게 내비치셨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나 같은 집으로 설계해 주시게'라는 교수님의 당부가 화두처럼 다가왔다. 사람은 늙어가지만 집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교수님을 닮은 집으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겠다.

 


 

경주 양동마을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첫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영감을 얻게 된 곳이다. 양동마을은 약 520년 전 형성되었다 하는데 지금도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양 씨족이 세거 하면서 경쟁하듯 집을 지었지만 마을의 대표적인 종가인 관가정과 향단은 가풍이 다르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나 같은 집'이라는 교수님이 주신 설계 지침은 마치 화두를 받은 것과 같았다. 교수님은 어떤 분이며 건축주를 닮도록 설계하려면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2004년도에 작업했던 설계 기록을 고쳐 써 올리는 글

 

 

설계자 김정관 건축사는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단독주택 이입재로 부산다운건축상, 명지동 상가주택 BALCONY HOUSE로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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