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문과 창으로, 열린 집과 닫힌 집으로 나눌 수 있는 단독주택

무설자 2024. 6. 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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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사는 생활이 갑갑하고 단조로워서 단독주택을 지어 사는 바람을 가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당만 있으면 집은 어떻게 지어도 상관없다는 듯 평면을 살펴보면 아파트와 닮은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다. 건축사도 아파트에 살고 있고 건축주도 아파트에 살았던지라 익숙한 평면도에 수긍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정말 마당이 있으면 집은 아파트처럼 지어도 괜찮을까? 아파트는 집 안에서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단독주택을 아파트 평면처럼 설계해서 지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 집 안과 집 밖으로 단절된 단독주택에서 살게 되면 바깥 공간은 관리 대상이 되고 말아 집을 유지하는 노동에 직면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문과 창으로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다르다는 것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문은 疎通소통, 창은 不通불통이라는 화두를 글의 서두에 던져서 얘기를 시작해 보자.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단독주택은 소통의 집, 아파트는 불통의 집이라고 언급하며 앞서 던진 화두가 풀어질지 공감대를 기대해 본다.  

 

관가정觀稼亭으로 ‘우리집’이 되는 단독주택의 원형原形을 본다

 

 

  경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반가班家인 관가정觀稼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사대부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급한 경사지에 입지 하기에 담장이 없이 사랑마당과 사랑채를 두었다. 어차피 담장과 대문은 바깥과의 경계를 삼기 위함인데 급경사의 언덕에 터를 잡았으니 따로 담을 칠 필요가 없음이라.

 

관가정의 사랑채는 당호대로 누각 형태로 멀리 벌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앉혔다. 사랑채에 오르면 기둥만 있는 마루든, 문을 열고 보는 방이든 이 공간은 정자처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경계 없는 공간이므로 손님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고 며칠씩 묵어갈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중문으로 출입구를 삼아 바깥과 구분되는데 중정中庭을 끼고 미음자로 배치되어 있다. 하늘로 열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대청마루와 안방과 건넌방이 접하고 있다. 중정에 면한 안채의 내부공간은 창이 없이 모두 문을 통해 두 개의 방에서 대청마루로 출입하며, 안방에서는 마루방으로 전체벽면이 문으로 이루어져 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관가정의 사랑채는 당호처럼 멀리 안강벌을 향해 열려 있다. 사랑채의 방은 창이 없이 문으로 누마루와 사랑마당으로 이어진다. 안채도 중정을 향한 벽은 문을 통해 하나의 영역으로 공간체계가 이루어져 있다. 문살과 창호지로 된 한옥의 문은 닫혀 있어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벽이었다. 들어열개문은 공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열린 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옥의 문은 궁극적으로 불통不通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疏通의 통로였던 것이다. 사랑채는 바깥세상과 열리는 공간이며, 안방은 식구들의 삶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옥의 문은 벽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필요하면 항상 열릴 뿐 아니라 들어 올려져 가면서 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었다. 한옥의 문은 벽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천정에 올라가 없어지기도 하면서 필요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소통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관가정 전경, 담장과 대문은 최근에 설치했다
관가정 사랑채-觀稼亭이라는 당호처럼 사랑채 마루에 서면 멀리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이 없는 아파트, 창으로 막히다

 

창窓은 벽의 연장으로 본다. 그러므로 창의 역할은 안팎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불통不通의 기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시선은 이어주지만 한기寒氣와 열기熱氣의 이동은 막고 환기마저도 초고층 아파트는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창문 밖에 없는 최신식 아파트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갇혀 있는 집이라 창문으로 먼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문門은 벽을 여는 통로이다. 벽의 일부를 터서 내부와 외부, 실과 실의 공간을 잇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문은 고정된 벽과는 반反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벽안에 매몰되거나 공중에 매달려 존재가 없어지기도 한다. 문이란 일시적으로 막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열어서 소통하는 데 있다.

 

벽과 창으로만 이루어진 집이라면 그 공간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통의 공간, 내외부 공간은 물론이고 방과 방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을 것이다. 발코니 확장이 적법하게 되어 거실 앞이 창으로 된 요즘 3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는 불통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오래된 투베이 아파트는 앞뒤 발코니가 넉넉하게 살아있다. 발코니 폭이 2미터까지 허용되었던 시절의 아파트 거실 분위기는 누마루 정자 같다. 뒷발코니로 문이 열리던 아파트는 앞뒤로 공간이 툭 트여 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열린 개념의 집이었다. 공동주택에서 확보할 수 있는 외부공간인 발코니는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꿀 수 있어 작은 마당이나 정원의 역할을 수행한다.

 

발코니는 바깥과 이어지는 매개영역이어서 거실의 큰 문을 통해 외부환경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바깥세상으로 열리는 발코니를 왜 없애고 바깥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집으로 만들어 버린 걸까? 화분 하나를 놓으려고 해도 물을 줄 수 없으니 집에서 보내는 생활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겨울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우는 이 광경은 발코니가 살아 있는 집이라야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발코니는 작은 정원이 되어 공중에 떠 있는 집의 최소한의 외부공간이 된다.

  

문으로 집의 안팎이 소통되는 ‘우리집’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편리하고 안전한 아파트를 떠나 살기에 불편한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로망처럼 여기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를 반증하듯 매달 온갖 매체에 잔디가 깔린 마당에 눈길을 끄는 디자인으로 반짝이는 단독주택이 근사한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만약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다면 ‘왜 나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진지하게 던져 보아야 한다. 답이 바로 나오기 어려울지 몰라도 아파트에서는 살기 싫다는 한 가지 이유는 뚜렷할 것이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이루어진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잠재된 위기의식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식구들만의 집이라는 바람에 대한 요구치가 아파트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우리집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화두의 답은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이나 벽으로 막힌 집이 아닌, 가능한 문으로 열리는 개념이 적용된 얼개의 집이라야 한다. 한옥의 얼개는 열린 집, 받아들이는 집이라 할 수 있으니 해결책의 팁은 한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교감하는 집의 얼개를 가진 우리 한옥은 소통의 집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집은 담장으로 에워싼 영역 전체를 벽과 창을 줄이고 내외부 공간을 문으로 소통시키면 된다. 거실은 큰 마당과 이어지고 서재는 조용한 안뜰과 하나가 되며, 주방은 다목적공간과 이어지고 식당은 햇살이 잘 드는 테라스와 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김정관- 도반건축사사무소 설계 경남 양산 석경수헌은 실내와 마당이 문으로 여닫으며 유기적으로 이어져 생활하는 집이다

 

단독주택을 단지 잔디 깔린 넓은 마당만 있는 집으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일층의 모든 내부공간이 문을 통해 외부공간과 적절한 관계 맺기를 해야 아파트와 다른 ‘우리집’이 된다. 이층도 방이 베란다와 발코니를 통해 외부공간과 하나 되면 창이 아닌 문으로 열리는 공간이 된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닫힌 누구의 집도 아닌 옆집이나 다를 바 없으니 우리집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 단독주택은 '문'을 통해 마당으로 열리도록 해서 내외부 공간이 하나가 되면 비로소 세상과 이어지는 ‘우리집’이 된다. 땅을 밟으며 살려고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아파트처럼 외부공간과 단절되게 지으면 정원 관리사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손님이라도 며칠 머물고 싶은 집, 가장 중요한 손님인 며느리와 사위가 기꺼이 찾고 싶은 집이라야 한다. 손님이 오지 않는 아파트는 가족 간에도 불통이 되어 외롭게 살 수밖에 없는 집이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손님을 불러들일 수 있는 소통의 집이 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집의 내외부 공간을 열고 받아들이는 그만큼 우리네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통하는 삶이면 좋겠다.  

 

 

 

설계자 김정관 건축사는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단독주택 이입재로 부산다운건축상, 명지동 상가주택 BALCONY HOUSE로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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