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아이들은 문간방을 쓰게 하면서 우리집이라고?

무설자 2023. 8. 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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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방은 한자어로는 房이고 같은 쓰임새로 室실이라고도 쓴다. 방을 영어로는 Room, One Room, Two Room으로 소규모 공동주택을 일러 이렇게 쓰면서 익숙한 생활 용어가 되었다. 노래방, 찜질방 등으로 구획된 실이 특정용도로 쓰이면서 방이란 말에 부정적인 느낌이 스며있기도 하다.  
    
방이라고 하면 옛 집에서는 큰방, 작은방, 안방, 사랑방, 고방 등으로 이름이 붙여 썼다. 이름이 지어진 방은 집을 구성하는 개실의 용도를 알 수 있다. 윗방과 아랫방이라 하면 방을 쓰는 사람의 위계를 알 수 있고 안방-안채와 사랑방=사랑채는 집에서 내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는 영역을 의미했다. 안방-안채를 쓰는 사람은 사랑방-사랑채 출입을 삼가야 하며 손님은 안채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실과 방의 차이를 굳이 말하라고 하면 입식 생활은 실, 좌식 생활은 방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규모가 커도 찜질방은 등 지지며 앉고 눕는 장소라고 '방'이라 하지 않는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거실, 응접실이 우리 주거 공간에 들어왔고 안방을 내실이라고 쓰기도 한다. 욕실도 집안에 들이게 된 화장실에 목욕의 기능이 추가된 아파트의 소산이라 하겠다.      

엄마아빠는 초디럭스 안방을 쓰고
아이들은 문간방을 쓰게 하면서 우리집이라고?

 
아무리 입식 생활로 집을 쓴다고 하더라도 실보다는 방으로 쓰는 것이 우세하다. 이제 우리는 집을 더 이상 좌식 생활로 쓰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래도 침실보다 방이라 부른다. 아파트에서 가장 혁신적으로 진화한 게 뭐냐고 살펴보면 안방인 걸 알 수 있다. 아파트의 초기에는 다른 방에 비해 면적만 넓게 썼지만 욕실이 부설되더니 지금은 파우더룸, 드레스룸까지 갖추게 되었다.     
 
근래에 공급되는 대형 평수 아파트의 안방은 특급 호텔 스위트급 객실 부럽지 않은 분위기이다. 안방과 주방, 거실이 세트로 분양 경쟁력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다른 방들이야 대충 현관 앞에 병설되어 있는 모양새로 큰 변화가 없다. 이렇게 되니 엄마아빠는 초디럭스 안방을 쓰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문간방을 쓰는 신세라는 걸 ‘엄빠’는 아는지 몰라.     
 
‘너네들은 학원 다니고 그러면 집에 있을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혹시 자기애가 강한 아이들이 문간방 신세에 대해 항의를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단답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할는지 모르겠다. 유달리 교육열이 강한 우리네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쫓다시피 뺑뺑이를 돌린다. 그러니 아이들은 비좁은 방에서 잠만 자다가 대학생이 되면 원룸이라는 큰 방을 찾아 집을 나갈 수밖에.     
 
아이들이 부모를 벗어나 독립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각방을 쓰게 된 부부 중 한 편은 문간방으로 쫓겨나도 갈 데가 따로 없다. 안방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방은 위화감도 커진다.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누구는 스위트룸을 쓰고 또 다른 쪽은 문간방이라니.     
 
통계를 낼 수는 없겠지만 부부가 따로 방을 쓰는 시기가 점점 빨라진다고 한다. 아이를 두지 않거나 한 명이라면 방이 세 개인 아파트는 부부 싸움 몇 번이면 각방 쓰기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누가 안방을 쓰고 문간방을 써야 할지 결론을 내기 위해 또 얼마나 다투어야 할까?   
 

필자가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 설계 중인 상가주택의 3층 단독주택 평면도
아이들의 방과 부부의 방 크기가 비슷해야  
식구끼리 차별 없는 '우리집'이다

지금은 부부의 각방 쓰기가 주거 생활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인정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파트뿐 아니라 새로 짓는 단독주택도 욕실이 부설된 안방을 없애야 한다. 부부가 따로 방을 쓰더라도 한 집에 사는 식구로 대화가 끊이지 않도록 집의 얼개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부의 영역으로 방 두 개가 욕실을 공유해서 쓸 수 있도록 하면 일상생활이 자연스럽게 겹치게 된다.     
 
아이들의 방도 부부의 방과 크기가 비슷해야 집에서 식구끼리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다. 요즘은 초등학생이면 몰라도 중학생만 되면 어른 못지않은 체구를 가지게 된다. 집을 지을 당시에 아이가 초등학생이라고 아이방으로 크기를 잡아 설계하는 걸 보니 한숨이 나온다. 집에 있는 방은 누가 쓰더라도 위화감이 없이 평등해야 한다.
 
아파트도 그러해야 하겠지만 집을 지어서 산다면 지금까지의 안방을 더 이상 두어서는 안 된다. 더 커지고 화려해지는 아파트의 안방은 집을 혼자만 차지하는 가정 독재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부부의 집이 아니라 훗날 손주까지 함께 지낼 수 있는 三代삼대 주거로서 ‘우리집’의 얼개를 찾아야 한다.        
     


 
이제 아파트라는 집도 식구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평면으로 재구성해서 공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의 민주화, 아니 식구들의 주거 생활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아파트가 공급되어야 한다. 우선 건축사로서 내가 설계하는 집만이라도 식구 모두가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우리집’으로 제안해 본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부산다운건축상,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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