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보이차 생차가 묵혀서 마셔야 하는 차일까요?

무설자 2024. 2. 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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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1029

보이차 생차가 묵혀서 마셔야 하는 차일까요?

 

 

 

노차란 한자 풀이 그대로 오래 묵은 차를 두고 부르는 말이다. 다른 차류에서는 쓰지 않지만 후발효차인 흑차나 보이차는 노차에 목을 매는 사람이 많다. 월진월향이라고 하며 후발효차는 오래 묵히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한 2006년에는 생차로는 ‘7542’가 생차의 대표라고 했다. 보이차는 마시는 목적 이외에 투자 목적으로 차를 수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7542’는 신차가 나오면 꽤 많은 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방품이 많이 나오는 차였다.     
‘7542’는 중국 최대 보이차 생산회사인 맹해차창의 히트상품이다. 1975년에 이 차가 처음 출시되었고-75, 4등급 찻잎을 썼으며-4, 차창의 고유번호가 2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7542는 여러 산지의 찻잎을 섞어서 구현해 낸 향미가 대중에게 호평을 받아 스테디셀러로 해마다 신차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생차와 노차, 7542와 홍인  

   
보이차에 입문하면서 내가 마셔본 7542는 떫은맛이 너무 강해서 왜 이 차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20년을 묵힌 차도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0년 정도 된 7542는 가격대가 신차에 비해 놀랄 정도로 비쌌다. 생차는 묵히면 향미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내 입에는 맞지 않았지만 가격을 보니 대량으로 수장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래된 보이차에 대한 선호도는 호급차와 인급차에서 절정을 이룬다. 노차의 최고봉은 호급차이고 마셔볼 수 있기도 하는 차로는 인급차이다.


동경호, 동흥호 등 1950년 이전에 생산된 차를 호급차로 부르는데 보이차에서는 골동품으로 분류된다. 그다음은 인급차인데 포장지에 찍힌 ‘’의 색에 따라 홍인, 남인, 황인, 녹인으로 구분된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제작되었다고 하며 한편에 일억 원 이상 거래된다.      


내가 마셔본 호급차는 보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다. 인급차는 홍인, 녹인, 남인 등 여러 번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그중 홍인은 지금도 그날의 향미를 잊을 수 없다. 그날 마셨던 홍인을 찻값을 지불했어야 했다면 아마 300만 원은 되었을 것이다. 혼자로는 마시지 않았을 테니 셋이 마셨다면 백만 원은 부담했어야 하는 차이다.  

동경호와 홍인

 

   노차를 진품으로 구입할 수 있을까?     

 

노차가 이렇게 고가로 거래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진품은 없어서 못 산다고 할 만큼 수요자가 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노차는 방품이 넘쳐나서 홍인 포장지로 판매되는 차가 흔하다. 진품인지 방품인지 구분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긴 하겠지만 내 주변에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찻값을 지불해서 마셔보려고 해도 진품 여부를 알 수 없으니 소장자와 함께 마셔볼 수 있으면 다행이라 하겠다.     

 

호급차와 인급차는 논외로 하고 흔히 노차로 분류하는 생차의 연수는 30년 정도로 본다. 지금이 2023년이니 1993년 이전에 생산된 생차는 노차로 볼 수 있겠다. 시중에 1990년대 차는 넘칠 정도로 많은데 진품차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를 파는 사람들은 누구나 90년대 차라고 하지만 대만이나 홍콩에서 오래된 차처럼 보이게 인위적으로 작업한 차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게 생차는 꼭 묵혀야만 마실 수 있는 차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보이차를 시작한 2006년에는 숫자급이라고 하는 ‘7542’류의 생차가 주류를 이루었다. 숫자급 생차의 모료는 대지차였으므로 쓰고 떫은맛이 많아서 묵히지 않으면 마시기 어려웠다.      


숫자급 생차가 입맛에 맞지 않았던 나는 숙차를 마시며 보이차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숙차 특유의 숙미를 싫어하는 사람은 생차를 마실 수밖에 없어서 묵은 차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묵은 생차를 구하는 사람에게 홍콩 대만의 작업차도 마실만해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요즘 내가 가장 즐겨 마시는 대평보이 필유여경-현대 보이차라는 숙차는 해마다 발효기술이 나아져 더 맛있는 숙차가 나온다

 


노차로 마셨던 생차, 햇차부터 맛있는 고수차     


2010년 이전에 생차를 소장하고 있는 양이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보이차는 노차, 보이차 소장은 무조건 ‘7542’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2010년 이후의 생차는 큰 변혁기를 맞게 된다. ‘고수차’의 등장이 그것이다.     


묵혀서 마시지 않아도 좋은 생차, 묵힐 필요 없이 올해 봄차를 녹차처럼 마시는 생차가 나타났다. 노반장을 필두로 보이차 시장을 접수하기 시작한 고수차는 광풍이라고 할 만큼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2015년 경부터 찻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생차의 새 시대를 열었다.     

 

고수차 이전의 생차는 신차의 가격이 7542라 하더라도 3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노반장은 백만 원을 훌쩍 넘기고 2020년 이후에 빙도노채는 300만 원 이상 호가하고 있다. 보이차 신차 한 편이 수십만 원을 넘어 수백만 원인데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차생활의 방향이 새로 형성되고 있다.     

 

올해 나온 차부터 십년이 지난 차가 다 맛있다. 매일 이 차들을 마시며 더 바랄 게 없는 차생활을 하고 있다

 

 


 


보이차는 비싼 차라는 인식은 마셔볼 수 없는 홍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의 소산이다. 그래서 홍인 포장지로 유통되는 작업차나 연수를 확인할 수 없는 90년대 차를 노차로 구입하지만 정상적인 차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나는 노차는 구입할 수 없는 차라서 소장자와 자리해서 마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보이차를 고수차로 마셔야 하며 가능하다면 차나무의 수령을 불문하고 첫물차를 구해 마시려고 애쓰고 있다. 운남의 수많은 차산지에서 나오는 보이차의 다른 향미를 즐기는 차생활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노반장은 포랑산의 수많은 차산으로, 빙도노채는 동반산, 서반산의 산지로도 얼마든지 보이차로 행복한 차생활을 할 수 있다. 노차는 나에게는 없는 차이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