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보이차의 심연 속에 잠겨

무설자 2023. 11. 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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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1106

보이차의 심연 속에 잠겨

 

 

보이차를 마신 지 어언 18년째가 되었다. 차를 시작할 때부터 하루에 3리터 이상 마셔왔으니 중독 수준이라 하겠다. 양으로도, 종류로도 어지간히 마셨다. 십 년은 숙차를 주로 마셨고 그 이후에는 생차로 갈아탔다.     

 

보이차를 시작하면서부터 차 생활에 대해 글을 써왔다. 글을 쓰려면 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해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년 동안 차만 마신 게 아니라 공부도 같이 해왔으니 문무를 겸비한 셈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숙차를 주로 마셨던 차 생활 초창기에는 사실 차에 대해 별로 따질 게 없었다. 그러다가 고수차가 보이차의 대세로 떠오르게 되던 2010년 이후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마실 수 없게 되었다. 7572만 마시면 그보다 더 좋은 차를 찾을 필요가 없었던 숙차에서 고수차로 갈아타고 보니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근래 필자가 즐겨 마시고 있는 숙차, 중발효 숙차가 드문 요즘 필유여경은 숙차의 풍미를 잘 살린 차로 평가하고 싶다

 

고수차 이전 생차는     

 

고수차가 아닌 생차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2006년 보이차에 입문할 때만 해도 고수차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생차는 7542로 대표되는 대지병배차만 있을 뿐이었고 마셔보기 어려운 노차만 회자될 뿐이었다. 아무리 7542라 해도 십 년 된 차라고 해도 쓰고 떫은맛에 마실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 당시에는 내 취향과 상관없이 숙차는 맞지 않다며 7542에 목을 매며 생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차 반열에 들었다고 할 수 있는 30년 이상 된 생차를 마시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보이차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그때 제대로 보관된 노차였는지 알 수 없다.     

 

요즘 노차라며 내어주는 90년대 생차는 거의 홍콩이나 대만에서 들여온다. 소위 작업차라고 부르는 습창차가 대부분인데 내 구감으로는 도저히 마실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차라야 보이차라며 마시는 분들은 목에 걸리거나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껍지 않은 지 희한하다.      

 

2010년 이전 생차의 표준이었던 대익 7542, 투자를 목적으로 대량 구매를 불사한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즐겨 마시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차로 유통되는 노차는 거의 이 포장지로 되어 있다. 진품 여부는 마시는 사람의 몫이다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면 선망의 대상인 홍인, 90년대 차로 이 포장지를 써서 유통되는 차가 흔하다. 차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마시는 사람의 몫이다

 

생차가 고수차로 나오게 되면서     

 

2010년경부터 보이차 시장에 고수차라는 이름으로 생차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도 운남에서 고수차를 만드는 분과 인연이 되었다. 그분을 통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생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지만 고수차에 매료되지는 않았다.     

 

고수차의 파급력은 놀라울 정도여서 우리나라 생차 시장을 흔들다시피 했다. 2015년경에는 고수차의 보급이 급속도로 올라가면서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제야 나도 고수차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었고 숙차와 다른 생차의 향미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숙차 위주로 보이차를 마셨지만 운남에서 보이차를 만드는 분과의 인연으로 2009년부터 고수차를 소장하기 시작했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고수차를 마시게 되었지만 소장하고 있는 양이 적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고수차를 마시다 보니 잘 마셔오던 숙차가 호불호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고수차로 마시는 생차는 숙차와 달리 마시는 종류마다 다른 향미를 음미하게 된다. 왜 고수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노반장이나 빙도에 집착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숙차도 7572보다 수십 배나 비싼 고급차가 나오고 있지만 노반장이나 빙도는 7542보다 백 배가 넘게 비싸다. 노반장이나 빙도가 수만 원대로 살 수도 있지만 정품이라면 수백만 원이라야 정상 가격이다.      

 

빙도노채 고수차, 가격표에 80,000 위안이라 붙여 놓았다. 우리 돈으로 1400만 원...ㅎ
대평보이에서 판매하는 빙도노채, 한편에 350만 원, 이 가격이라면 믿고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즐겨 마시는 대평보이 석귀 고수 첫물차, 한 편에 35만 원이니 첫물차로 마시는 고수차의 진미를 맛 볼 수 있다

 

첫물차지만 소수차라고 밝힌 영덕오채 차, 내가 왜 첫물차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고수차는 너비가 아니라 깊이     

 

고수차는 산지로 차 이름을 가지는데 이름만 고수차인 가품이 아니라 제 산지에서 생산된 정품이라도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난다. 고수차의 가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있는데 첫째는 산지, 둘째는 수령, 셋째는 채엽 시기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 의해 고수차가 분명해도 수백 배의 차이가 나게 된다.     

 

보이차를 구입하면서 차 산지를 구분하게 된 시기는 2010 년 무렵이다. 노반장을 찾는 사람이 갑자기 늘게 되면서 해마다 새로운 차산지가 소개되고 그 산지의 차의 가격이 공시되고 있다. 2023년 고수차의 모차 공시가격이 kg당으로 빙도노채가 90,000 위안, 노반장은 20,000 위안인데 비해 이가촌은 400 위안에 불과하다. 이가촌과 빙도노채의 차이는 200 배 이상이니 산지별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차나무의 나이, 수령은 또 모차 가격에 얼마나 차이를 주는지 보자. 고수차의 지존이랄 수 있는 빙도노채는 수령이 100년 이상인 고수차는 20,000~90,000 위안, 50년 이상인 중수차는 6,000~12,000 위안, 50년 이하인 소수차는 3,000~5,000 위안이다. 산지 표기를 빙도노채라고 포장지에 나와 있어도 최고 30 배 차이가 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채엽 시기는 어떨까? 그 해 산지별 차 가격이 공시되는 건 명전차, 조춘차, 두춘차라고 하는 첫물차에 한정한다. 첫물차가 아닌 차는 가격을 공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보이차는 겨울을 제외하고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새 잎이 돋아나는 대로 따낸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량이 한정된 고수차를 이른 봄 첫물차로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23년 보이차 산지별 모차 공시 가격표

 


           

 

 

 

노반장이나 빙도 노채의 첫물 고수차를 마셔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어느 산지라도 좋으니 수령 100 년 이상 된 차나무의 첫물차라도 마셔볼 수 있을까? 내가 마셔본 노반장, 빙도노채는 어떤 차였는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수차가 어떤 차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노반장이나 빙도노채만큼 흔한 차가 없어서 그 차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또 보이차를 마시고 있다면 노반장, 빙도노채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노반장, 빙도노채를 고수차로 첫물차를 마실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나는 오늘도 보이차를 마신다. 노반장, 빙도노채는 아니지만 누구나 알만한 산지의 수령 300년 이상 된 첫물 고수차로 보이차의 심연을 마신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