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내일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무설자 2023. 11. 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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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1127

내일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환절기가 되면 부고가 많이 들어온다. 기온의 진폭이 잦은 봄가을에 유명을 달리하는 분이 많으신 것 같다.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는 건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니 슬픈 마음에 명복을 빌면 된다. 그렇지만 이제 환갑을 넘긴 가까운 분들의 부고를 받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이 달에만 아직 일흔도 안 된 나이인데 본인이 운명했다는 부고를 두 통이나 받았다. 문상을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스마트폰에 연락처가 있으니 부고를 보낸 모양이었다. 한 사람은 내가 맡고 있는 감리 현장 소장이었고, 또 다른 분은 선배 건축사와 함께 내 사무실에서 차 한 잔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감리 현장 소장 폰 번호로 들어온 부고를 받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체크하느라 전화를 넣어도 연결이 되지 않아 그분의 어른이 돌아가셔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기다렸는데 전화가 들어와서 받으니 딸이라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부고를 열어보니 망자가 본인이었다.      
 
이제 겨우 환갑이 지난 나이였는데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도 원만해서 현장을 마무리해도 인연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다음 주에는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부고를 받았던 다른 분은 건축 관련 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체의 대표였다. 그분이 생산하는 제품이 경쟁력이 있어 내년에 상장을 앞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분을 사무실에 함께 방문했던 선배 건축사와 가까운 사이였고 마침 차를 좋아해서 인사를 나누었었다.     

차를 마신 지 오래되지 않아 선배 건축사께 그분의 안부를 물으니 병원에 있다고 했다. 한번 만났던 사이였지만 차를 마시며 마음이 오가는 느낌이 좋았던지라 안부 메시지를 넣었다. 답신이 없어서 선배 건축사께 그분의 안부를 물었더니 병세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보냈던 메시지의 답신이 부고로 들어왔다.  
   
감리를 맡고 있는 현장의 소장은 건물이 완공되면 본인이 사업을 할 거라며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생사가 호흡 간에 있다고 하지만 심장마비로 운명을 다할지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몇 달 후의 사업을 준비하던 공사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할 줄이야.     
 
평생을 애써서 상장을 앞둔 기업을 운영하던 그분은 건설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유명 인사였었다. 강직한 성격이지만 인품도 단정하고 사업을 크게 이루고 없었던지라 교분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을 일구어 결실을 거둘 시점에 세상을 떠나야 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인의 연락처로 받게 되는 부고가 본인이나 배우자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 나이가 여든이 지났으면 모르지만 이제 겨우 환갑이 지났을 뿐인데 친구나 선후배가 당사자인 부고가 잦아진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여든이 넘었다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     

부처님이 길을 가다가 궁궐 같은 집을 짓는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많은 일꾼 들 사이에 일을 진두지휘하는 노인이 눈에 띄었는데 보아하니 집주인인 듯싶었다. 그를 바라보니 곧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데 집 짓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생사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그 노인을 불렀다. 일에 열중하던 노인은 부처님이 부르니 다가와서 짓고 있는 집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잠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부처님이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떼자마자 노인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대들보를 올리는 중에 줄이 끊어져 그 아래에서 지휘를 하던 노인이 깔려 죽고 만 것이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그 노인은 자신이 살 집을 고대광실로 짓고 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누구나 살아갈 날을 꿈꾸지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보다.   
 
  


잠이 들기 전에 하루를 잘 살았고 잠이 드는 걸 죽음에 드는 것이라 여기면 어떨까? 다음 날 잠에서 깨면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었으니 소중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승원 작가는 그의 시 ‘녹차 한 잔 2’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엄중하게 가르침을 내리는 것 같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때 마시고
내일 죽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절망적일 때 마시고
세상은 제법 살만한 세상임을 깨닫고
영원히 살 수도 있음을 깨닫고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