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으면 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우리나라에서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이니 거실 말고는 있을 곳이 따로 없지 않은가? 그러면 거실 소파에 앉거나 드러누워서 TV 보는 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 별다른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 거실은 TV를 보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거실 벽 TV 화면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오디오 시스템도 보강하는 집이 많다. 안락한 TV 시청을 위해 다리를 쭉 뻗고 볼 수 있는 소파가 없는 집이 없다.
집에서 주로 TV를 보는 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닌지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왜 집에서 TV만 보느냐 하면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도 없지만 딱히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OTT 서비스로 제공되는 전 세계의 다양한 프로그램에는 볼 시간이 모자랄 정도이니 TV 화면에 시선 고정을 할 수밖에.
거실이 없었던 시절에는
우리나라 전통 주택인 한옥에는 거실이 없다. 굳이 거실 기능을 하는 공간을 들라고 하면 사랑채를 이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사랑채는 외부 손님을 응대하는 응접실의 기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곳은 안방이니 거실 역할을 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 전쟁 이후에 주택은 질보다 양으로 지었던 양옥집에도 거실은 따로 없었다. 안방은 거실과 식당의 역할뿐 아니라 손님이 오면 객실의 기능까지 담당했었다. 이때까지는 좌식 생활을 했으므로 안방뿐 아니라 다른 방도 다목적으로 쓸 수 있었다.
좌식 생활로 살았던 시절에는 넓은 집이 아니라도 삼대가 한 집에서 살았다. 식구수가 많아도 방 하나를 둘이나 셋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집이라고 해도 마당이 있어서 밖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지만 식구들이 밤이면 모깃불을 피우고 평상에 모여 수박을 쪼개 먹으며 한담을 나누는 장면은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 우물이 있는 집은 과일 등을 두레박에 담아 보관해서 시원하게 해서 먹었다. 펌프질을 해서 퍼올린 차가운 우물물로 등목을 서로 해주던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생긴 거실은
TV가 보급되는 시점과 거실을 가진 아파트가 공급되던 시기가 맞아떨어지는데 이때부터 입식 생활도 시작되었다. 또 아파트의 주거 특성상 부부와 아이들만 살게 되는 핵가족 시대도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겠다. 식구 수가 줄면서 그만큼 대화도 줄게 된 원인은 오로지 소파와 TV라고 지목한다.
소파는 TV를 향해 일방향으로 배치되고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할 기회도 줄게 되었다. 입식 생활은 가구에 맞춰 이루어지게 하니 식구들이 개인화되어 갔다. 거실에 소파가 자리를 차지한 뒤로는 할 수 있는 일이 TV 시청 밖에 없으니 채널권이 없는 아이들은 제 방이나 바깥으로 나돌게 되었다.
집에는 TV 음향만 난무할 뿐 식구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대화가 사라져 버린 집은 더 이상 가정이라는 온기도 식어져 식구라는 유대감도 옅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대학생만 되면 집에서 독립하는 이유도 우리집이라는 정체성이 없어진 탓일지도 모른다.
TV 음향이 아니라 식구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창을 넘는 집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집에서 뭐 하느냐고 물어오면 TV 본다는 대답 말고 다르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집에는 저녁마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고 하면 아마 누구나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거실에 TV를 치울 수 없다면
거실이 TV가 있음으로 식구들이 낱낱이 흩어지게 된다는 게 과한 이야기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TV를 치워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TV 없이 사는 집이 없지는 않지만 누구나 그렇게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를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테이블이라고 할 것이다. 왜 테이블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느냐고 하면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싱크대에 붙어있는 부엌 가구인 식탁이 아니라 멋들어진 테이블을 둔다면 그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테이블은 적어도 여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이면 좋겠다. 테이블의 소재는 꼭 결이 예쁘게 져 있어야 되고 손이나 팔뚝에 닿는 촉감이 좋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테이블에는 유리판이 깔려 있으면 안 된다. 테이블이 놓이는 자리가 중요한데 아파트 거실에는 어디가 좋을까?
멋들어진 테이블에 차리는 음식은 그릇도 골라서 쓰게 되지 않을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면 느긋하게 밥을 먹게 되니 대화도 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밥을 먹고 나면 차나 와인과 함께 후식을 먹으면서 대화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리라.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마도 밥 먹을 때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며 식탁에서 이어지는 가장의 훈시로 딱딱한 자리였다. 그렇지만 식구들이 아침저녁을 꼭 한 자리에서 먹으며 우리 식구로서 결속을 다졌다.
단독주택이 아니어도 아파트가 이제는 우리집이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우리집’이라는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 정체성을 되살리는 노력을 하루에 한 끼라도 식구들이 같이 먹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솥밥이 바로 情정이니까.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부산다운건축상,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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