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을 써 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고교 시절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사십 년이 넘은 셈이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필전문지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
등단 전에 잠깐 선배 수필가 분의 지도를 받았다. 일반인과 문인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독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독자는 가르치는 대상일 수 없고 내 자랑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붓 가는 데로 쓰는 건 좋지만 계몽조나 신세타령, 소소한 개인사를 늘어놓는 게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며 가르치려 든다던지 내 자랑을 쓰면서 독자가 읽어주길 바란다면 오산이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잡문을 쓰면서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어왔다. 내가 쓴 글이 제한된 독자가 있는 지면에서는 박수를 받는데 그런 호응에 우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린 세상을 향해 글을 쓰는 문인이라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주저해선 안 된다고 한 조언이 늘 생생하다.
골목대장으로 우쭐대던 얼치기 글재주로 어쩌다가 등단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내면서 수필가라는 직함을 건축사와 함께 올린다. 초고를 써놓고는 몇 번이고 퇴고를 하면서 남을 지적질 했는가 내 자랑이 없는지 살핀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쉬울까? 내 허물은 대들보인 걸 보지도 못하면서 성냥개비 같은 남의 허물에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남을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면서 자신의 작은 선행에는 큰 박수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정작 수필가로 등단하고 나서 내 이름 석 자로 수필은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필명인 무설자로는 숱하게 글을 쓰지만 수필가로는 행세하기 어렵다. 남 탓하지 않고 내 자랑하지 않는 글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수필가로 당당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장롱운전면허처럼 등단만 해 놓은 얼치기 수필가는 오늘도 쓰다만 원고를 키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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