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아파트는 아파트일 뿐 우리집은 아니다?

무설자 2021. 12. 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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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에서 산다. 단독주택, 공동주택만 집이 아니라 오피스텔, 고시원도 있고 심지어 생활형 숙박시설도 집이다. 오늘 뉴스로 접한 일본 도쿄의 초소형 공동주택은 10㎡에 욕실과 주방, 소파까지 갖추어 혼자 사는 주택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유형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집도 그에 맞추어 각양각색으로 공급되고 있다. 집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한 루이스 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다양한 주택의 유형을 두고 일일이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지만 아파트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자 한다.

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데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우리나라에 처음 아파트가 공급되었을 때는 난방을 연탄을 연료로 바닥 난방을 하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썼다. 그 시절은 집이 부족해서 삶의 질과 연관해서 지을 상황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지는 만큼 아파트도 진화를 계속해왔다.

 

지금은 수십 층을 넘어 백층 초고층 아파트로 지어지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주거 공간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룸에 사는 사람과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주거 만족도에서 어떻게 다를까? 그 답을 한 마디로 내리기 전에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 학교 앞 원룸을 구해 집을 나간다니 집의 규모가 만족도와 이어지는 건 아닌 듯하다.     

 

바다 풍경이 무색해지는 부산 공안리 인근 아파트 숲

 

투 베이, 스리 베이, 포 베이  

 

국민주택규모라고 하는 전용면적 85㎡(25,74평) 아파트를 예로 들어서 살펴보자. 초기에 공급된 아파트의 평면 유형은 소위 투 베이라고 하는 안방과 거실이 전면으로 나왔다. 그 이후에 쓰리 베이로 공급되다가 최근에는 거실과 방이 모두 전면으로 나오는 포 베이로 정착되었다.

 

투 베이 평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격적인 아파트 생활을 알리는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알게 모르게 가족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안방과 거실은 남향에, 나머지 방 두 개는 북향으로 배치되었으니 ‘엄마 아빠는 좋겠다’라는 심리가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았을까?

 

스리 베이와 포 베이 평면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방도 전면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평면 구성에서 아이들 방은 현관 근처에 있으니 문간방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방의 구성에서도 안방은 크기도 그렇지만 파우더룸과 욕실까지 부속되는 스위트룸 분위기이니 방의 여건은 점점 격차를 가지게 되었다.  

     

남향에는 안방과 거실

 

안방과 작은방의 쓰임새를 살펴보자. 엄마 아빠는 거실을 쓰는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안방은 밤에 잠만 자는 용도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작은방에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데 싱글 침대와 책상, 작은 옷장을 넣고 나면 여유 공간이 아예 없다.

 

작은방은 배치되는 방위에서도 뒷면으로 밀리는데 면적에서도 제대로 쓰임새를 가질 수 없는 셈이다. 가족들을 동등하게 본다면 방을 쓰는 입장에서는 차별이 많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모르겠지만 덩치가 커지는 중학생이 되면 방이 좁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방은 아이들의 일상생활 공간이다. 물론 거실이 의미로는 가족 모두가 쓰는 공용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TV를 보는 기능에 그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작은 방에 갇혀 지내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라져 버린 발코니

 

아파트에도 최소한의 외부공간이 있었다. 최근에 공급되는 아파트에는 이 외부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바로 발코니인데 한 때는 폭을 1.8미터까지 가진 아파트가 공급될 때도 있었다.

 

광폭 발코니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화단을 설치하도록 했는데 이때가 아파트 평면의 전성시대가 아니었겠는가 싶다. 그런데 더 넓은 실내 공간을 가지려는 욕심으로 발코니 불법 확장이 성행되어 마침내 합법화되고 말았다.

발코니는 집 안과 밖을 매개하는 처마의 기능과
거실에서 바깥 공간으로 나가는 영역의 확장 효과를 가지게 된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아예 설계단계에서 평면 구성을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못하도록 공급이 되었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인 아파트의 외부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발코니가 있어야만 아파트라는 집이 외부로 향하는 숨구멍을 가지게 된다.

 

왜 발코니가 있어야 하는가? 발코니는 집 안과 밖을 매개하는 처마의 기능과 거실에서 바깥 공간으로 나가는 영역의 확장 효과를 가지게 된다. 비와 햇볕을 실내로 바로 들이지 않고 조절하는 역할과 작은 공간이지만 외부 활동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오래된 투 베이 아파트의 발코니, 겨울 햇살이 거실 안 깊숙히 들고 발코니에는 작은 정원이라며 초목이 푸르러다

그런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는 밖으로 향하는 문이 없어져 창과 벽으로 차단된 실내 생활만 하게 되고 만다. 발코니는 작은 정원이 되기도 하고 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는 작은 테이블이 놓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1.8m 광폭 발코니가 설치된 아파트는 얼마나 다양한 외부 공간을 연출할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라도 방의 위상을 공평하게 한 평면 구성이 되어야 하며
사라진 발코니를 다시 살려 아파트도 우리집이 되어야 한다

 

아파트는 아파트일 뿐 집이라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방의 여건에서 식구들의 공평한 삶을 수용하지 못하고 발코니라는 외부 공간이 사라지니 창과 벽에 둘러싸여 갇힌 생활을 해야 한다. 식구가 모여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데다 갑갑한 집이 싫어 집 밖으로 나돌게 하니 아파트는 우리집이라는 정서는 찾을 수 없으니 이를 어쩌나.  

 

그렇지만 이미 우리는 아파트를 집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방의 위상을 공평하게 한 평면 구성이 되어야 하며 사라진 발코니를 다시 살려야 한다. 아파트가 집일 수 있는 평면 구성을 다음 글에서 제안해 보고자 한다.

 

브런치 2021. 12. 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