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또 한 정치인의 죽음을 마주하고-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명복을 빌며

무설자 2020. 7. 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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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공인公人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목숨을 버리게 되면서 왜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 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분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일들이 그가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도록 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끄러운 일로 덮여질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 그렇고 한 사람의 잘못을 누가 단죄할 수 있느냐는 '죄없는 자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의 말씀이 그러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일이 아니면 아무런 가책없이 함부로 던지는 말에 누군가의 목숨이 좌우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세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온갖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 비록 자신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다고 하면 죄가 되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남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냉정한 이성적理性的 사고로 대해야 하는 사회적 관계의 사람도 남녀가 일을 하다보면 잠깐 감성적인 상황에 빠져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 않은가?

 

이성적인 판단을 한 순간이라도 놓쳐서는 안 될 지도자의 처지에 있는 사람은 잠깐의 감성적인 실수라 할지라도 세간의 비판에 시달려야 한다.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평생 족쇄처럼 달고 다녀야만 하는 사회적인 위치의 무거움을 어찌하랴. 정치인이라는 자리는 정권의 행방으로 칼자루를 쥐느냐 깔끝에 놓이느냐에 따라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것을 어찌하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자, 성직자, 정치인들이 세간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십거리에 너무 자주 오르내린다. 이 정도는 별 문제가 없다는 그 수위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어 국민들이 오히려 걱정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이제 우리 사회는 누구를 지도자로 삼고, 어떤 기준점을 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뜬금없어 보이는 소문이 정치인으로 존경 받아오던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 버렸다. 페미니스트로서 여성문제를 사회의 수면 위로 올려 놓았던 분이 그 물에 가라앉아 버리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청빈과 소명의식으로 3선 서울시장으로서 서울 시민과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그 분이 이렇게 생을 다하고보니 그 충격은 일파만파로 우리 사회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분은 한 개인으로는 용서를 구하고 법적인 처벌로 가해자의 입장을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신망을 받던 공인으로서는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살아서는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올곧은 그의  양심이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을 것이니 우리 사회의 의식있는 지도자의 한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울시장장으로 치루었던 그를 보내는 자리가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고인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어 본다.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며 그를 아꼈던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건만 왜 그런 장례를 치루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소회로 한 분의 훌륭한 정치인을 보내는 마음을 글로 옮겨 보았지만 누가 과연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길이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영전에 맑은 차 한 잔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