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 첫 빨래기」
김 정 관
아내가 외출한 휴일, 집안 일 중에 내 소임인 대청소를 끝내고 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손빨래를 해야 할 옷이 생각났다. 뒤늦게 철이 늦게 든 남편이 아내의 살림을 돕는답시고 집안일을 챙기고 있다. 집 청소는 오래 전부터 해왔고, 라면은 아내보다 잘 끓인다는 건 딸도 인정하는 일, 아내가 싫어하는 일인 과일 깎기에 내 옷은 내가 다려 입는 일까지가 내 소임이다. 그런데 아직 설거지와 쓰레기 버리는 일은 가장의 체면이 걸린 일이라며 아내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빨래는 아직 아예 접근해 보지 않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얼마 전 세탁소로 보낼 철 지난 옷을 챙기다가 작년에 사서 올해까지 입었던 외투 안감에 붙어있는 택을 살피게 되었다. 작은 글씨를 스마트폰 촬영모드로 확대해서 세탁설명을 보니 손빨래를 하면 좋을 옷감이었다. 물 온도는 30℃ 이하로 하고 세제는 중성세재, 옷의 염료가 빠져나올 수 있으니 단독세탁을 하라고 되어 있었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관절이 성한 곳이 없는 아내는 손세탁은 어림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 세탁설명을 확인할 일이 없으니 다른 겨울 옷과 함께 드라이클리닝을 맡겼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휴일에 외투를 내가 직접 손빨래해보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해보지 않은 일도 스마트폰 정보 검색이면 어렵지 않게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못한다는 건 하기 싫어서 안 한다는 것과 같다. 스마트 지식정보를 가동해서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다용도실에서 큰 대야를 가져와 미지근한 물을 받아서 중성세재를 적당량 풀었다. 빨랫감을 담그고 잠깐 주물렀는데 맑았던 물이 금방 제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줏빛 물감이 살짝 풀어져 나오는 걸 보니 단독세탁을 하라는 지적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첫 세탁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한참을 주무르니 두 철을 입으며 묻혔던 먼지와 땀이 빠져나와 물색이 혼탁해졌다.
십 분이나 주물렀을까 싶은데 팔이 뻐근해 온다. 직업으로 내가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서 손목 아래만 쓴다. 그러다보니 손목 위 부위에 힘이 더해지는 잠깐 힘쓰는 일에도 몸에 무리라는 반응이 오는가 보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았다면 아마도 혀를 찼든지 핀잔 섞인 말을 던졌으리라. 시집와서 맏며느리로 삼십 년 넘게 해왔던 아내의 노동 강도는 어떠했을까? 아내는 그동안 얼마나 팔을 썼으면 어깨관절에 석회가 껴서 수술을 하네 마네하고 있는 중이니까.
일단 주무른 빨래에서 빠져나온 땟물을 부어내고 옷감에 밴 세재를 헹구는 작업에 들어갔다. 헹구는 과정은 선행先行된 작업에 비할 바가 아닌 시간과 물,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땟물인 일차오염물을 만들어낸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주무르고 빨랫감을 짜내는 과정을 열 차례 정도 반복해야 했다. 이 과정을 대충해서 세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마르고 난 옷에 얼룩이 지고 말 것이다.
때를 빼기 위해 세재를 쓴다. 하지만 빨래의 마무리는 철저하게 행구는 과정, 옷감에 침투된 세재를 꼼꼼하게 빼내는 일인 듯싶다. 때를 쉽게 제거하려고 세재를 많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하고서 헹구는 과정을 소홀하게 하면 때와 세재가 혼합된 얼룩이 남아서 빨래를 다시 해야 하는 낭패를 보고 말 것이다.
헹구는 과정이 마무리되면 탈수를 해야 한다. 물에 흠뻑 젖은 외투를 손으로 짜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외투 전체를 비틀어 짜내려고 하니 힘만 들고 효과가 떨어졌다. 머리가 장식으로 있는 게 아니라는 군대 시절 선임의 호령이 떠올랐다. 양소매를 하나씩 먼저 짜내고 몸통을 아래위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니 어느 정도 물이 빠졌다.
처음 해보는 제대로 된 손빨래의 지난至難한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전승품戰勝品처럼 자주색 겨울 외투는 옷걸이에 걸려 발코니에서 햇살과 바람을 맞고 있다. 빨래가 햇볕으로 마르기도 하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수분이 훨씬 빨리 증발될 것이다. 앞뒤로 발코니가 있어 툭 틔어서 통풍이 잘 되는 우리 아파트는 빨래 말리기도 아주 제격이다. 발코니가 없는 요즘 아파트는 빨래를 어떻게 말릴까? 하긴 건조까지 세탁기에서 끝내주는 시대에 무슨 빨래 말리는 걱정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만.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왔다. 발코니에 널린 외투를 보고 동공이 커졌다.
“나 없이 휴일에 청소를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웬 빨래까지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제대로 때가 빠지긴 했나?”
청소는 늘 내 차지인지라 생색을 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손빨래는 아내도 생각지 못한 선행善行이었기에 툭 던지는 한 마디에 감동이 살짝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손빨래를 처음 해보면서 얻었던 깨달음, 옷에 밴 때를 빼기 위해 세재를 쓰지만 빨래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그 세재를 다시 빼내는 공력功力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죽을 각오로 학교 공부나 인생 공부랍시고 온갖 지식을 채워 타고난 부족함을 보충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의 내 모습, 학력이나 직위나 아직 부족한 돈을 얻으려 애쓰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어느 듯 나도 환갑을 앞둔 나이에 드니 건강은 허물어지고,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이승을 떠나고 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 이순耳順을 눈앞에 두니 간절해진다. 나를 포장하고 있는 허위를 들어낸 ‘온전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화두가 저절로 들려지는 요즘이다.
빨래에서 헹구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인생도 마무리 시점에는 가진 것을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 나이까지 습習이 되어버린 가식을 씻어내는 일이 그렇게 만만할까. 내 삶의 욕구를 채우는데 썼었던 노력을 이제부터 빨래를 헹궈내듯이 집중해야만 귀천歸天에 가까워져도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봄 햇살도 좋은 날에 바람까지 불어주니 발코니 건조대에 널려있는 빨래가 잘 마르고 있다. 정남향 집의 발코니는 햇볕도 잘 들지만 남북으로 트인 구조의 집이라 바람이 지나가면서 빨래가 마르는데 일조一助를 해준다. 햇볕으로만 빨래를 말리려고 하면 겉이 먼저 마르기 마련이니 자외선에 옷감의 색이 바랄 수도 있겠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니 널린 빨래가 팔랑대며 옷 속의 수분까지 잘 증발되고 있다. 빨래를 말리는 주역主役은 햇볕일까 바람일까?
생애 첫 빨래를 해보면서 얻었던 깨달음이 이만하니 몇 번 더 잘 주무르다 보면 아직 못다 푼 인생의 화두가 툭하며 떨어질지 누가 알리오.
(2019. 5. 29) -에세이스트 2019. 7-8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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