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의 얼개 짜보기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아파트와 내가 지어서 사는 단독주택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

무설자 2018. 8. 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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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靜中動運氣로 푸는 단독주택의 구성, 세 영역으로 나누어 얼개짜기-프롤로그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아파트와 내가 지어서 사는 단독주택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끝없이 지어지고 있다. 공동주택의 시작은 단독주택이 여러 채 모인 저층 연립주택이었다. 하지만 이제 해운대의 엘시티는 백 층에 가까운 울트라 슈퍼초고층 공동주택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부산의 도심을 거의 점령해 가고 있는 수십 층의 초고층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그 하늘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해운대는  엘시티가 있어서 행복한 도시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진화하지 않고 퇴화되는 인 아파트

 

과거의 판상형 아파트가 경관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해서 부산시에서는 경관심의에서 탑상형 빌딩스타일을 권장했다. 하지만 판상형과 다르게 탑상형 아파트는 집안에 바람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냄새가 빠지지 않아 요리도 하기 어려웠다. 탑상형 아파트에 대한 크고 작은 불평이 잦아지자 다시 판상형 평면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초고층으로 다시 등장한 초고층 아파트는 판상형을 위주로 하면서 일부는 탑상형의 평면이다.

 

초고층으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대부분 발코니가 없어진 평면을 가지고 있다. 외기와 각 실들이 발코니라는 매개공간이 없이 직접 마주치게 되어 있다. 공동주택에서 발코니는 최소한의 외부공간인데 다용도실과 피난공간을 제외하고 모두 다 합법적으로 미리 확장이 되어 버렸다. 초고층임에도 불구하고 외기와 실내가 창문으로 바로 맞닥뜨리니 늘 닫혀 있는 상태로 살게 된다. 사람이 안에서 사는 게 아니라 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더 심각한 공동주택은 원, , 스리룸이라 부르는 도시형 주택내지 오피스텔이다. 그 곳은 사는 사람들의 주거 생활의 편의를 안중에 두지 않고 공급되었으니 잠을 자기 위한 숙소로 쓰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인 주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아닌 으로 소형공동주택이 공급되고 있다. 원룸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 집다운 집이 아니라면 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없이 떠도는 사람들

 

집이 없이 떠도는 사람들,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은 잠만 자고 나올 뿐 도시를 떠돌며 살고 있다. ‘이 없으니 집밥을 먹지 못해 배는 채울지 몰라도 마음의 허기까지 달랠 수는 없으리라. 볼 일을 마치는 대로 곧장 돌아는 곳이 이어야 하는데 밤은 깊어 가지만 불이 밝혀지지 않는 집은 이 되지 못한다.

 

도심과 강변, 산자락에서 바닷가까지 점령한 수많은 초고층 아파트와 원룸빌딩은 바벨탑을 연상하게 한다. 높은 곳에 살려고 하는 건 사람들의 어떤 욕구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한 삶을 위한 집에 살고 싶은 바람은 수십 층 아파트로는 채워질 수 없는데도 누가 백층까지 짓도록 부채질하는 것일까?

 

집에서 사는 행복은 하늘로 치솟는 높이의 욕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땅과 접해서 사는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을 수 있다. 도시의 집은 땅을 버리고,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시골의 집은 사람들이 자연을 외면하고 떠나서 버려지고 있다. 도시의 은 정체성을 잃고 말았으니 의 껍데기만 남아 행복은 무너진 바벨탑과 무엇이 다를까? 바벨탑의 숲 아래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여

 

울산 다가구주택 원명재는 4층의 건축주 세대는 작은 마당을 두어 땅을 딛고 살던 건축주의 바람을 해소했다

 

필자설계 울산 다가구주택, 원명재- 산자락에 있어서 4층 주인세대 마당에서 내려다 본 저층주거와 고층아파트

 

 

 

   ‘을 찾는 사람들이 지어서 살려고 하는

 

아파트에서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 눈치 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분양 받아서 돈을 주고 산 집에는 행복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지 않다. 건폐율과 용적률에 맞춰 수치로 설계된 공동주택에 정량화될 수 없는 행복을 어떻게 입력할 수 있었겠는가? 설계자가 햇볕과 그늘을 미리 들였어야 하고, 비와 바람을 앞서 맞아 보았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설계 작업에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아파트 공급사의 관심은 용적률에만 있을 뿐이어서 규모를 결정하는 심의위원의 눈에 들어 최대 수익성 확보에만 집중할 뿐이다.

 

우리 식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이라면 아마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집일 것이다. ‘우리집은 엄마아빠에게만 좋은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만족하는 집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좋아하는 집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출가하면 사위나 며느리, 손주들도 좋아해야 하는 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작품으로 유명해지는 집, 건축주 한 사람만 만족하는 집,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만 멋진 집이어서는 우리집이라고 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되거나 주택 전문지나 여성잡지에 소개되는 집의 사진이나 도면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그럴듯하게 기사거리로 잘 소개되었지만 우리 식구가 살아도 좋은 우리집으로 다가오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식구가 살고 싶은 우리집의 얼개를 짜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집터를 어디에, 땅의 크기는 얼마나, 집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잡아야만 적당할까?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집이 될지 깊이 생각해서 정해야 하리라. 지난 호까지 설계의 의도에서 집짓는 과정을 소개한 심한재心閑齋를 예로 들어 그 얼개를 구성 요소별로 나누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 식구 모두 좋아하고 손님들도 부러워하는 우리집은 어떤 집일까? 필자는 서른 채 가까운 단독주택을 설계해 오면서 준공 이후에 집을 찾아다니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독주택을 작업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설계했던 집에  20년이 넘게 살고 있는 건축주를 찾아뵈었다.

 

  “아직도 이 집에 살고 계시는군요.”

  그럼요. 우리가 이 집을 떠나서 어디에서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좋은 집을 설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설계해서 지은 단독주택에는 건축주들이 거의 대부분 입주한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내가 설계한 집은 팔아서 득이 되는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집'으로 살기에는 더 좋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건 틀림없는가 보다 (2018. 8. 26)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

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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