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確幸, 보이차로 누리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부산일보 2018. 2. 23일자 32면에 덕후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연재코너에 내 이야기가 실렸다.
보이차 덕후라는 생경한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또 하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이차 뿐 아니라 일상에서 차를 즐겨 마신다면 소확행을 얻을 수 있는 건 분명한 일이다.
이 기사를 읽고 누군가 차 마시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사 원문을 카피해서 블로그에 담아둔다.
[덕후가 행복한 세상] 보이차 덕후 김정관 씨
茶 '말 없는 말' 공유하는 상호 존중의 매개체
예능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시대.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 이상순 부부는 차를 마시며 하루를 연다. 둘 중 한 사람이 차를 우려내면, 테이블엔 사람들이 모이고 한가로운 대화가 오간다.
모두가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때, 이효리 부부는 차를 마신다. 창밖엔 눈이 오고, 집안엔 음악이 흐르는 공간. 이 아늑함 속에서 느리게 음미하는 차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일 것이다 .
TV 화면에 등장한 이효리 부부의 차판이 누구보다 반가운 한 사람.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소장)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차만 한 게 없다"고 했다. "차 한잔할래?"로 말을 걸면 풀리지 않는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앉는 자리는 사무실이든, 집이든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공간이 된다. 보이차에 푹 빠져 살지만, 그가 더 사랑하는 건 어쩌면 누군가와 공유하는 차를 마시는 시간일 것이다. 보이차 덕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차 생활 덕후인 셈이다.
'무설자'라는 필명으로 '무설지실'(無說之室)이란 블로그(http://blog.daum.net/kahn777)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파워 블로거. '말 많은 세상, 그런데도 들을 얘기는 드무니 말 없는 말을 차 한 잔에 담아'. 블로그를 소개하는 짧은 글처럼 '무설자'는 '말 없는 말을 차 한 잔에 담아' 소확행을 부지런히 전파하고 있다.
차의 소중한 덕 '상호존중'
집, 글, 농사, 밥, 약. 이 단어들 뒤엔 모두 '짓다'라는 동사를 붙일 수 있다. '짓다'는 '마음을 다해 성심성의껏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글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 건 모두 마음을 다해 성의껏 해야 하는 일.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 살고, 외식도 잦은 바쁜 일상은 어느 순간 더는 무언가를 짓지 않는 시대를 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던 건축사는 2006년 부동산정책으로 일이 줄면서 보이차를 만났다. 그는 보이차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지났고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보이차 덕분에 일 없는 일로 견뎠다. 회원 30명 온라인 차 동호회 '다연회'를 만든 것도 이 무렵이다.
김 소장은 "커피는 마시면서 싸울 수도 있지만, 차는 누군가 한 사람이 우려내야 하니 차를 마시면서 싸우는 일은 없다"고 했다. 차는 정성껏 우리고, 기껍게 받아 마시니 차가 주는 덕은 상호존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대화가 없더라도 차를 함께 마시는 거로도 소중한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일 없는 일을 통해 공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차는 한국적인 정서를 건축에 접합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김 소장이 설계하는 단독주택엔 함께 차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사랑채가 있다.
'小確幸' 일상의 소소함에서 찾는 행복
한때 흉물이었다가 김 소장이 리모델링해 원도심 명물로 거듭난 서구 부민동 복합문화공간 겸 카페 '에피소드인커피' 2층 한구석에도 '차실'이 있다. 창문을 열면 거리와 소통하는 공간이 되고, 창문을 닫고 카페와 연결된 문까지 닫으면 오롯이 차에 집중할 수 있는 섬 같은 차실. 다연회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이곳에서 오프라인 정기모임을 열고 차가 있는 삶 이야기를 나눈다.
에피소드인커피 차실은 어떤 조명을 켜 두는가에 따라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달라진다. 벽에 걸린 그림 위 조명을 켜면 갤러리가 되고, 두 사람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는 머리 위 백열등만 켜두면 '집중하는 공간'이 된다. 거리와 소통하는 창문도, 카페와 연결된 문도 닫은 차실은 밖에서 보면 가장 깊숙한 공간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숨은 공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같은 건물에 있는 도반건축사사무소 소장실은 온통 보이차가 차지하고 있다. 생차, 숙차 등 보이차가 종류별로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곳도 있고, 항아리 속이나 책장 구석구석까지 보이차가 점령했다. 필요해서 구매하는 차도 있지만, 때로는 "내 차를 맛본 후 글을 한번 써 보라"며 차를 보내오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차가 품고 있는 의미는 무궁무진하니 차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끝이 없다"고 했다.
밥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차는 뚜렷한 향이나 맛이 없어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그는 "꾸준히 마시다 보면 미세한 맛을 구분할 수 있고, 많이 마실수록 맛이나 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했다.
그에게 보이차는 어떤 의미일까. 김 소장은 "나 혼자 즐기고, 내 것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매개체"라고 했다. 마주 보고 마시는 차는 위아래가 없이 평등하기도 하다. 차 생활은 그의 '소확행'이자 '모두를 위한 생활'. 그래서 그는 '말 없는 말을 차에 담는 일'을 오래오래 이어갈 생각이다.
-강승아 부산일보 선임기자 / 부산일보 2018. 2. 23. 32면
'茶 이야기 > 에세이 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차를 마시며 짓는 죄 (0) | 2018.03.29 |
---|---|
차를 마시고 남는 것은? (0) | 2018.03.25 |
부산일보에 보이차덕후로 소개되다 (0) | 2018.02.24 |
제주도에서 온 밀감을 먹으며 (0) | 2017.12.12 |
숙차와 벌거숭이 임금님 (0) | 2017.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