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덕운 주영배 형님을 보내며

무설자 2016. 7. 2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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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운 주영배 형님을 보내며





또 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갔다. 평생 도반으로 함께 할 수 있을 분이라 여겼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훌쩍 이 세상의 삶을 벗어 버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같이 따르면서 차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벗 중의 한 분이 이제 다시 자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말수가 적어서 더 좋았던 그가 말없음이 그를 상하게 했었던 것일까? 그랬었다면 좀 속을 풀어내고 사셨으면 좋았을 걸.


비가 잦아서 올 장마는 왜 이렇게 오래 가냐며 하늘을 탓할 때 그는 죽음과 맞서고 있었나보다. 몇 년 전 암이 발병하여 힘든 항암치료를 끝내고 빠졌던 머리도 다시 원래의 모습도 되찾고 얼굴도 생기를 회복했었는데 왜? 손발이 저린다며 목디스크를 걱정하면서도 암이 다시 몸을 상하게 한다는 건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그와 자주 시간을 같이 했던 도반도 그에게서 이 삶을 정리하기 위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이 맞닥뜨린 죽음 앞에 그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삶에 대한 의지를 앞세우며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을 애써 감춘 그의 절실함에 마음이 아려온다. 이제 예순을 갓 넘긴 그는 자신을 돌보기보다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참 많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수행하면서도 대불련 동문회 회장을 맡아 소임에 대해 책임을 다하느라 동분서주 했다고 한다. 일 하는 노력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건 그 자체가 마음에 큰 부담이 오는데 그 몸으로 왜 그 소임을 맡았을까? 다른 얘기는 숨김 없이 나누었는데 그 얘기는 왜 하지 않았을까? 암이 처음 발병했을 때 그냥 툴툴 털고 작은 암자나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를 바라보며 염려했던 내 마음처럼 주변 사람들도 그러했었나 보다. 그의 빈소 앞에서, 그의 유골을 반냐라마 뜰의 단풍나무 아래에 묻으면서 다들 그렇게 아쉬워 했다. 그를 이렇게 훌쩍 떠나보낼 수 없어서 마음에 묻으며 그의 최근의 삶을 아쉬워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이 세상의 삶을 접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살아갈 세월이 많이 남아 있기에 그를 쉽게 떠나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원성거사~ 어디에 계시나?" 하고 전화를 주던 그의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다. 불편한 다리를 살짝 절면서 산으로, 절로 같이 다니던 그의 후덕한 모습이 늘 그리울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책으로 엮는 일을 하면서 수행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가 왜 훌쩍 이 세상을 떠날 준비도 없이 그렇게 가야 했을까? 오고감이 없이 떠난다고 하지만 그를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다. 그를 보내고 온 이 밤. 이제사 마음이 먹먹해져 온다. 분명 그는 이 세상의 몸을 벗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덕운 형님~~~~



(2016,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