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차 마시는 여행

무설자 2016. 5. 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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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605

차 마시는 여행



일박이상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꼭 표일배와 차를 챙긴다. 술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텔 객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쓰기 위함이다. 여행일정이 끝나고 취침까지나 일정을 시작하기 전시간에 차가 없다면 TV 리모컨을 들고 있기 십상이다. 방을 같이 쓰는 분이 있으면 여행 기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이 때 차는 대화를 집중시키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아뭏든 여행기간동안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가는 건 나에게는 필수사항이다.

지난 4박6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던 태국여행에서도 방을 같이 썼던 선배님과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침마다 형수님과 차를 마시면서 일과를 시작한다는 선배님이어서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차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에서 차를 마시면 생활의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밤 시간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쓸 수 있기에 선배님의 지난 삶의 다이제스트를 들을 수 있었고 깊은 경륜이 담긴 인생의 지혜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과 중국뿐만 아니라 이번 태국에도 호텔 객실에 커피포트가 있어서 차를 마시기에 아주 좋았다. 일본과 중국에는 티백이지만 객실에 꼭 차를 비치해 놓는다. 일상에서 차를 마시는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호텔에는 믹스커피와 티백차가 있기는 하지만 정수기가 있을 뿐인 점이 비교가 된다.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떠나는 관광은 쫓기듯 움직이는 일정에 객실에서는 잠만 자는 시간일 뿐이어서 쉬어가는 여행과는 다르다. 밤시간에는 유흥 프로그램, 낮에는 토끼걸음으로 주마간산식의 코스눈도장 찍는 관광은 돌아와서도 사진에 남아있는 다녀왔다는 흔적 밖에 없다.

이번 태국여행은 패키지가 아니어서 쉬엄쉬엄 비교적 느긋한 일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호텔에 들어오면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고 아침이면 늦어도 9시에는 미니버스에 타는 일정이어서 휴양지 호텔의 프리미엄을 누려 보지 못했음을 아쉬워 했다. 파타야의 아마리타워 리조트는 바닷가에 접해 있어서 호텔 주변의 해변을 산책하는 것만 해도 여행지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호텔 부대시설만해도 최고의 시설로 꾸며진 정원과 옥외 수영장을 갖추고 있었는데 풀에 발도 담궈보지 못하고 왔으니 휴양지를 눈으로만 보고 온 셈이다.







관광과 여행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관광은 가이드를 따라 우왕좌왕 뛰다시피 쫓아 다니는 것이라면 여행은 내가 원하는 장소를 필요한만큼 시간을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계획된 일정을 얼마든지 현지 사정에 맞춰 바꿀 수 있다. 그렇기에 어디를 가보느냐는 목적보다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가는 여행이라면 눈으로 보는 관광식의 일정보다 미련이 남아 마음을 남겨두고 올 수 있어야 하리라.

다음 여행에는 시설이 좋은 호텔을 잡아서 하루 정도는 객실에서 차 마시며 빈둥빈둥시간을 보내고 슬리퍼를 끌며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일정을 잡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무리 좋은 이국 정취라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는 감동까지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몸이 쉬어질 때 비로소 일상을 벗어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여행은 마음 맞는 벗과 차를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쉴 수 있도록 계획을 잡을 것이다.  이생을 떠나면서 소풍 왔다가 돌아간다고 한 천상병 시인의 삶을 생각해 본다. ( 2016. 5. 3)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