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광운공병 자차煮茶로 우려 마시기

무설자 2015. 11. 1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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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1511

광운공병, 자차煮茶로 우려 마시기




보이차나 흑차류는 원래 차호에 넣어서 우려 마셨던 차는 아닙니다. 소위 중국의 변방의 허접한 차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다구를 써서 차를 우려 마시기보다 실사구시로 큰 유리컵에 찻잎을 넣어서 불어가면서 마십니다. 지금도 흑차류는 티벳으로 수출되어 덩어리채로 야크젓과 같이 끓인 수유차를 숭늉처럼 마십니다. 다구를 갖춰서 우려 마시는 우리의 차 마시기는 중국에서는 아주 격조있는  차생활인 셈이지요. 그래서 '어떤 차'를 마시느냐를 고민하는 게 우리라면 중국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그냥 마시는 '어떻게 차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잎차를 우려 마시는 차생활은 깊이 들어갈수록 복잡해져서 따질 게 너무 많습니다. 어떤 물이 좋고, 찻그릇에 따라 차맛이 달라진다느니 하는 건 기본이고 차를 우리고 받아 마시는 것도 예법을 따집니다. 물론 최고의 차는 당연히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제맛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고급 차관에 가면 차호 하나에 차를 담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줘야 마실 수 있는 차도 있습니다. 이런 차관에는 전문으로 차를 우려내는 다예사들이 있어서 최고의 차맛으로 마실 수 있습니다.


차예사가 우려내는 차맛에는 미칠 수 없겠지만 우리도 차에 적합한 차호와 물, 잔을 골라 써가면서 맛있는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왜? 차는 목을 축이는 단순 음료로도 좋지만 마음까지 다스리고 치유할 수 있는 힐링의 수단이 될 수 있기에 나라별로 다양한 다법과 예법이 생겼습니다. 알맞은 다법으로 우려서 마시면 그 차로 음미할 수 있는 최상의 향미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한 잔의 차, 이 작은 잔에 담겨있는 차는 진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광운공병입니다. 운남성의 찻잎으로 광동성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광운공병이라고 하는데 조기광운공병은 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거의 50년이 넘은 차입니다. 통칭 노차라고 하는 오래 묵은 차는 진품이라고 해도 보관환경에 따라 그 향미가 천차만별이라서 마시고 난 뒤에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다연회 창립 9주년을 축하하고 일년 전에 운명을 달리하신 세석평전님을 추모하는 찻자리를 위해 갤러리번의 묘불님이 어렵게 내어주신 차입니다. 열다섯 분이 마실 양이었으니 족히 10g은 되었을 것입니다. 큰 마음을 내지 않으면 쉽게 내어주실 수 없는데 이렇게 좋은 차를 마신다는 건 우리 다우님들이 보통 茶福이 아닙니다. 귀한 차이니만큼 스무 번 이상 우려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엽저를 버리지 않고 따로 챙겨 두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煮茶를 해서 더 마시기 위함이었지요. 자차가 무엇이냐고요? 찻잎을 끓여서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도자기 그릇에다 우려마시고 난 엽저를 끓여낸 차를 마시는 것이 광운공병에 대한 예우지요. 차를 모르는 분들은 궁상을 떤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기광운공병이라면 그 대접은 이미 골동품 수준에 가있는 차랍니다. 이런 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니 이 차는 또다시 마시기가 어렵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차로 마무리해야 하지요.


집에 있는 핫플레이트로 다려내듯 서서히 시간을 두고 차를 뽑아냅니다. 거의 한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노차를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인연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홍인, 남인 등의 인급차부터 호급차도 다복이 있어서 수 차례 마셔 보았지만 기대만큼 만족스러웠던 두 차례 밖에 없었습니다. 광운공병도 그랬는데 오늘 이 차는 정말 좋았습니다.



다려가면서 중간 중간에 마셔봅니다. 차를 많이 넣어서 그런지 우려 내었을 때만큼 향미가 좋습니다. 잘 보관된 차라서 창미나 다른 잡미는 일체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홍인이나 남인만큼은 아니지만 노차의 진정한 향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다려냅니다.




꼬박 한 시간을 다려내니 이만큼 양의 차가 나왔습니다. 약 300cc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릇의 분위기로 보면 거의 보약 한 사발로 보입니다. 보이차를 좀 아는 분이라면 보약보다 더 좋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약도 이 정도로 정성껏 다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진하게 다렸습니다. 유리 숙우에 가득 담고 남은 양은 꿀꺽 마셨습니다. 엽저라고 버렸으면 이 차는 마실 수 없었겠지요? 늦은 밤 우려서 식구들도 다 잠자리에 들어가서 온전한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나만 마시니 생각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다회에 참석해서 같이 마셨던 다우님들 외에 다연회 다우님들, 특히 중국 장기 출장 중인 응관님이 많이 생각납니다. 노차만 드셨던 세석평전님도 그리워집니다. 매일 연락을 주고 받는 진주의 명백수님, 일산의 여공님도.... 그래서 좋은 차는 다우들과 함께 마셔야 하나 봅니다. 



엽저를 봅니다. 수십년 세월에도 이처럼 잘 보관된 노차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 귀한 노차를 마실 기회를 주신 묘불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