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노차 좀 마셔 보셨습니까?
-'73 청병-
보이차를 본격적으로 마신지 9년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보이차를 알게 되어 카페 활동을 통해 보이차의 넓고 깊은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2006년에 모 카페에서 차를 주문해서 마시게 되면서 시작되었지요.
글쓰기를 좋아하다보니 보이차를 마시면서 알게 되는 것을 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는만큼 글로 쓰다보니 순전히 차를 마시면서 느낀대로 쓴 것입니다.
차에 대한 정보도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아는 것이 전부였지요.
보이차 생활에 대한 짧은 글을 자주 쓰다보니 많은 다우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연회 다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객관적인 보이차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었죠.
온라인으로 알게 된 다우들과 교분이 깊어지면서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잦아졌습니다.
일상에서 마시는 보이차는 거의 숙차였습니다.
체질이 소음인이라 그런지 생차는 손이 잘 가지 않더군요.
사실 보이차는 많이 마셔보면서 알아가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입니다
그런데 노차는 그럴 수가 없지요.
노차의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생차는 30년 정도 넘어야 하고 40년 이상된 차라야 대접을 받습니다
제대로 노차라 할만한 차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합니다.
호급은 접하기가 어렵지만 인급 보이차는 소장한 분들이 더러 있어서 얻어 마실 기회는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에 한번 정도 참 좋은 차를 마셨다는 만족함이 있었으니 내게 노차에 대한 환상은 일찌감치 없었다고 봐야겠습니다.
간혹 좋은 노차를 얻어 마셨을지라도 그 자리에서 마신 후에는 잊어버릴 정도 였지요.
노차를 마시면서 걸리는 것은 습을 먹었다는 근거인 창내였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기대하는 향기가 아니라 불쾌한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노차를 즐기는 분들은 이 창내에 대부분 관대하다는 겁니다.
'노차는 다 그래'
오히려 창내가 나지 않으면 노차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긴 30년, 40년의 세월동안 제대로 잘 보관된 차가 드물기도 할 겁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노차의 정체입니다.
근래에는 포장지에 제조일자와 차창 등의 차에 대한 정보가 잘 나와 있지요.
하지만 오래된 노차는 중차패 포장에다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오로지 차를 마셔서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지요.
'73 청병,
이날 마셨던 이 차는 진정한 노차일까요?
경주 아사가 차관에서 가졌던 특별한 차모임에서 마셨던 노차입니다.
특별한 차모임이란 운보연 주관의 '한국백년고수차우회' 결성을 위한 준비 다회입니다.
운보연에서 준비했던 고수차를 마시고 난 뒤 그에 대한 답차의 의미로 아사가 차관에서 우린 차입니다.
'88 청병, '73 청병과 '72 반장청병을 이 다회에서 마셨습니다.
그 중에서 '73 청병을 마신 느낌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아사가 다회의 회장님이 이날 찻자리를 위해 '73청병 완편을 내 놓으셨습니다.
'73청병이 73년도 차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귀한 차를 이 찻자리를 위해 완편을 허무는 선심을 써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팽주를 맡아주신 아사가 차관 대표께서 완편을 허물고 있습니다.
200cc 정도의 차호에 차를 얼마나 넣으면 될까요?
귀한 노차라 망설이자 회장님은 망설이지 말고 넉넉하게 넣으라고 하시네요 ㅎㅎㅎ
30g을 넣었습니다.
한편의 1/10 정도되는 양이지요.
궂이 가격으로 따지자면 손 떨리는 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려낸 차의 탕색을 보면 호에 차가 얼마나 넉넉하게 들어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커피로 보자면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마시면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입 안에 담기면서 잘 묵은 노차의 느낌이 은근하면서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은근함은 천천히 잘 익었기에 그랬을 것이고 강렬함은 넉넉한 차의 양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후발효차의 매력은 시간이 변화시킨 차맛일 것입니다.
시간을 통해서 익은 차에서만 얻을 수 있는 편안한 맛과 은근한 향입니다
차맛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없어 아쉽지만 잘 발효된 묵은 숙차보다 더 편안한 차였습니다.
다섯 시간의 찻자리 중에 노차만 세 시간을 계속 마셨는데도 부대끼는 것이 없었으니 얼마나 좋은 차입니까?
엽저를 쏟아내니 큰 접시에 한 가득입니다.
목질화되거나 탄화된 엽저는 전혀 없습니다.
갈색으로 익은 차의 엽저가 이 차의 이력을 알게해 줍니다.
저에게 노차를 마시는 날은 특별한 외식을 즐기게 되는 겁니다.
그 자리는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차를 준비해 주신 다우의 정과 인연을 같이 나누게 됩니다.
무설자의 글을 즐겨 읽는다고 하시면서 가지고 있는 차를 나누는 게 뭐 특별하느냐는 말씀이 더 좋았습니다.
차는 진한 정이며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운보연의 한국백년고수차우회 준비다회에 참석해서 염불보다 잿밥에 더 팔린 셈입니다.
차가 주는 인연, 처음 뵙는 다우들이지만 이보다 더 편안할 수 없으니 전생의 인연이 닿아 있겠지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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