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무명차를 마시다

무설자 2011. 4.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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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121

무명차無名茶를 마시다

 

 

 

無名茶를 마시다

白利雲

 

한줌 검은 숯이 무쇠 솥을 데워서

물이 끓기까지 차와 하나 되기까지

얼마나 무수한 세상이 지켜보는 것인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중심에 선 햇살들이여

찻물이 바닥날 즈음 떫은 법도 하건만

오묘함 잃지 않음을 누구에게 물어보랴.

등 굽은 소나무가 宗山을 지키듯이

사람의 사는 일도 마치 저와 같아서

외로운 향기끼리 모여 무명차를 마신다.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의 시조작품입니다

들리실 때마다 댓글을 달아주셔서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저의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 당신의 시집으로 대신하셨습니다

 

시조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아낼 수는 없지만 '無名茶'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저도 닉네임에 '無'가 들어 있어서 그 의미와 같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보았습니다

이름이 없는 차라서 하잘 것이 없는 차라고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이 시의 문은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차든지 포장지나 그 차를 담는 상자에 이름이 인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 중에서도 특히 보이차는 포장지에 쓰여 있는 정보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그 차를 파는 사람의 말도 다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요

 

비단 차 뿐일까요?

상품이라고 시중에 나오는 온갖 것의 광고는 잘 팔기 위한 선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실망하는 정도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면 이름을 지워버리고 대해야 하겠지요

이름이 있어도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대하는 그것에서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보이차는 특히 선입관이 없이 마셔야 하지요

 

사람을 만날 때도 지위나 학력, 직업이나 성별 등을 따지지 않아야만 진정한 교유가 가능할 것입니다

차를 마신 이력을 내세우는 사람과 함께 하는 찻자리는 '和'와 '敬'이 없습니다

차를 분별하는 자리에는 '淸'과 '寂'이 함께 하지 못하지요

 

차도 사람도 '無名'이라야 합니다

차만 있고 사람만 있는 그 자리라야 진정한 찻자리가 될 것입니다

차를 매개체로 사람이 함께 하는 그 자리, 온갖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차도 사람도 꽃이 됩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