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차를 주문하면서

무설자 2011. 2. 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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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보이차를 처음 접하면서 썼던 글입니다

보이차에 입문하는 분들께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올려봅니다

 

 

 차 마신지 20년, 아직 차맛을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차를 마시는 건 다관에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우려서 찻잔에 따라 마시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을 차를 마신다고 하지만 그 맛을 안다고하는 건 별개이다.

 

물 먹듯 마시는 것이야 차와 입만 있으면 되겠지만 차를 제대로 마신다하는 건 다른 게 더 있어야 한다. 

차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릇을 알아야 하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중국에는 차 종류가 수천가지나 된다는데, 그릇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 많은 차와 그릇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차와 그릇의 의미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가까이 하되 귀하게 여기지 못하면 이용만 하는 것이지 즐기는 건 아니지 않을까? 

오래 차를 마셨다고 하지만 차나 그릇을 알려고 하는 노력은 그 세월에 비해 너무 모자랐었다.

차를 구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나누어 주는 것으로 대충 해결하다보니 진지하게 차를 알 기회를 가지지 못했었다.

보이차, 우롱차, 철관음 등으로 대분류를 했었을 뿐 이래서 좋은 보이차, 저래서 괜찮은 철관음 등으로 나누어 살필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릇 또한 손에 잡히는 대로 주전자로 생겼으면 그 그릇에 차를 우렸고 잔으로 보이면 그 그릇에 차를 담아 마셨다.

중국차를 마신 지도 그럭저럭 몇 년이 되었지만 변변한 자사호 하나 갖추지 못했다.

자사호 하나에 생차, 숙차 정도는 나누어 우려야 한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차를 마신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다해 차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시고 싶은 간절함으로 차를 찾아야 하는 것이니 어떻게 구했느냐에 따라 그 기대도 달라질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차를 소량으로 얻어서 마시는 자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서너 번이면 다 마셔버리는 분량이라면 차를 우릴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차를 따르는 손이 떨릴 것이다. 

마음이 설레고 손이 떨리는 차,  생각만 해도 그런 차가 궁금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차를 우릴 수 있어야 비로소 차를 마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구할 수 있는 차, 아무 그릇에나 내는 그 마음으로 마셔 온 나의 차 생활은 제대로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번에 차를 주문하면서 어떤 이름을 대야할지 알 수 없어서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게 차 생활을 해왔느냐를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수십, 수백 종류의 차가 있는 중국에다 주문을 하려니 그냥 알아서 보내달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을 담아야 하는 건 차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일일지라도 그러해야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면 더 그러해야 하리라.

좋은 것, 귀한 것을 가까이하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된 차생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먼저 주지 않고는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마음에 담아 살고 있지만 그 실천은 그러지 못했으나 차 한 잔의 의미를 살피니 눈이 뜨인다.

좋은 차를 제대로 마시기 위한 노력이 나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