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찻잔 이야기

무설자 2010. 4. 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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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015

찻잔 이야기

 

 

 

 

찻잔 세 개

인연이 닿아 늘 가까이 두고 있는 잔들입니다

돈을 들여 제 곁에 두게된 것이 아니니 값으로 치지 못하는 아이들이지요

하나는 집에서 쓰고 다른 하나는 사무실에서 저와 함께 하고 나머지 하나는 모셔두고 있습니다

 

 

 

집에서 쓰고 있는 잔입니다 

종교 관계로 친분이 있는 분께 선물을 받았는데 느낌이 참 좋은 잔입니다

잔 하나로도 충분히 포스가 느껴집니다

 

벌써 5년 가까이 늘 쓰고 있는 지라 이제 찻물이 제대로 들었습니다

넉넉한 두께에다 무게감이 적당히 느껴지니 잔으로도 제 모습을 과시하는듯 합니다

유약도 자연스러움을 표현하여 정형의 틀을 살짝 피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떤 차를 담아도 제 빛을 살짝 드러냅니다

탕색을 느끼려면 흰 잔이 좋지만 잔 자체에 담아 마시는 그릇을 느끼는데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손에 익어서 차보다 잔이 좋아 늘 쓰는 것이지요 

 

잔의 겉면을 보면 더욱 애정이 더해집니다'

손에 잡히는 맛을 고려한 것인지 원을 그리며 처리를 했지요

유약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데다 유약이 묻지 않는 굽부분이 정겹습니다

 

뺀질한 안쪽보다 굽이 보이는 아랫쪽이 훨씬 정이 가지요

굽에 찻물이 배여서 이제는 제 잔이다 싶습니다

평생 제 곁에 두고 쓰고 써야겠지만 언제 이별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두번 째 잔은 사무실에서 늘 저를 기쁘게 합니다

미색의 잔이 찻물이 배여서 남을 줄 수는 없습니다

주로 숙차를 마시다보니 큼직한 크기가 차를 마시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얇게 빚은 잔이라서 입에 닿이는 감이 참 좋답니다

바깥으로 굽어져서 입술에 닿는 느낌이 차 마시는 편리함을 더해 줍니다

이제는 모서리에 작은 흉터가 남아 쓰는 그릇의 의미를 알게 합니다

 

송사리 한마리가 찻물을 부으면 유영을 합니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살짝 휘감아 도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요

녹차에서는 고요함이, 홍차나 보이숙차에는 깊이감을 주지요 

 

이 잔의 포스는 손에 쥘 때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감아쥐며 따뜻함을 한사발 먼저 마십니다

도공의 의지를 저는 여기서 느낍니다 

 

잔의 진면목은 뒤집어 놓고 보았을 때 느끼게 되나요?

남성적인 힘이 이 잔에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강한 골격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세번 째 잔은 사연이 깊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원광스님이 아끼시는 요의 잔이지요

부산 다계의 원로였으며 제게는 결혼식 주례의 인연을 주셨던 스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약을 두텁게 처리하는 것이 이 요에서 만드는 그릇의 특징입니다

유약이 두터우니 결 사이로 찻물이 아름답게 배이더군요

이 잔은 잘 쓰지 않아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잔과 한 식구인 다구를 쓰던 분이 제게 건네셨는데 사연을 담아 보관하고 있지요

잔을 볼 때마다 고인이 되신 스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차를 마시게 된 것도 스님과의 인연이니 제게는 참 의미있는 그릇입니다

 

생긴 모양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냥 무겁고 투박하기만 하고 볼 품은 없습니다

굽까지 유약이 내려가서 만지는 맛도 못합니다

 

잔을 만든 분이 이제는 요가 있는 지역의 명성을 대표하는 도공이 되신 분이지요

쓰지 않는 그릇이니 제게는 그냥 유물처럼 두고 지냅니다

그래도 가까이 둘 수 있는 명분이 있어 아낀다고 해야겠지요

 

쓰다가 흠집이 나고 그러다 깨어지는 것이 그릇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아끼고 쓰다듬는 그릇이 있고 아끼지만 두고보는 그릇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 손을 떠날 그릇이지만 오늘 마시는 차 한 잔이 담기는 그 인연이 더 소중합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