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무소유

무설자 2010. 3. 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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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설자가 쓰는 사는 이야기 1003


   무 소 유


 

  만남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법정스님을 처음 뵈었던 건 대학생이었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기 전인 1978년이었다. 부산대학교 불교학생회에서 스님을 모셔 특별강연이라는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했었다. 스님의 이력에 꼭 따라다니는 민주화를 위해 애 쓰신 그 활동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버스 운전사가 이상하다고 합시다. 그가 술을 마셨든, 정신이 이상하든, 마약을 했든지 간에 운전사가 정상이 아닌듯이 보인다면 승객들은 그 운전사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상으로 보이지 않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스를 타기위해 토큰 하나 내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며 가만히 있으면 그만일까요?"

 

  스님이 강의를 했던 그 무렵에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한강다리에서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를 빗대어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대학생 상대로 드러내어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그 때는 캠퍼스 내에 사복경찰이 깔려 있었다. 서슬이 퍼런 분위기에서도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셨던 분이 법정 스님이었다. 

 

  그 강연을 통해 나는 법정스님의 팬이 되었고 무소유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이후로 무소유를 읽고 또 읽으며 스님이 말씀 하시는 삶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스님의 수필집인 '무소유'를 3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읽고 있다. 책 한 권을 30년이 넘도록 읽고 있는 사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한 책을 세 번이나 판형을 바꿔서 책을 찍어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나처럼 오랜 시간을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자도 있고 시기에 연연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새 독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소유

 

  스님은 수필집의 제목으로 글 중에서 '무소유'를 선택했다. 무소유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빈 몸뚱이에 최소한의 옷과 소유물을 지닌 노숙자와 스님과 같은 출가자는 가진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무소유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진 게 없는 무소유와  가지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자신을 위한 소유는 최소한으로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스님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타고난 일꾼이었다. 평생을 수필을 쓰셨고 그 쓰는 일 하나로 누구도 만들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첫 산문집인 '무소유'로 출판사는 30년이 넘도록 책을 계속 찍을 수 있었다. 월간지 샘터에 '산방한담'이라는 코너를 오래 연재했었다. 스님의 연재 글을 읽기위해 잡지를 구독했고 샘터의 전성기를 구가 했으니 좋은 필자를 얻는 게 출판사의 사활이 걸린 셈이다.

 

  스님께서 그동안 쓴 원고로 발간한 책의 인세만 해도 대단하다고 한다. 수필가는 전업으로 하지 못하는 문학의 장르인데 작가들의 부러움을 샀을지도 모르겠다. 인세 수입과 스님의 삶은 별개의 문제이니 '무소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셨을 뿐 인세로 생긴 수익은 세상에 널리 회향되었으리라.

 

  출가 수행자의 본분은 깨달음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것이다. 스님은 출가자에게 재물이란 수행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의 근거는 행자 시절에 효봉스님으로 부터 받은 가르침에 의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행자 시절 호롱불을 켜고 주홍글씨라는 소설을 숨어 읽으셨답니다. 스승이신 효봉 스님이 그것을 아시고는 아주 엄하게 호통을 치셨답니다. 출가자가 쓰는 모든 물건은 신도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 올린 공양물인데 그것을 출가자가 본분을 지키는데 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출가자는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뜨거운 쇳물을 먹듯 해야 한다며 효봉스님은 스님을 경책 하셨다고 합니다.

'시주의 은혜를 많이 지면 내생에 그 집 소가 되어 힘든 일로 갚아야 한다는 말을 노스님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겁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 안에는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는 무서운 인과의 도리가 들어 있다.

 

  스님께서 남긴 '무소유'의 의미는 당신의 삶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셨다. 무소유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면서 얻어진 결과를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가능한 적은 양으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몸뚱이 하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임을 보여 주셨다.

 

 

  아름다운 마무리

 

  재가의 속인과 출가 수행자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 하셨다. 어쩌면 그 출가라는 의미는 승복을 입고 안 입고의 차이가 아닐 것이다.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의미를 실천하는 자는 곧 출가자라 해도 될 것이다.

 

  최근에 들면서 고승이라고 할만한 스님들이 입적하신 뒤에 스님의 부도를 호화롭게 만들고 있음을 본다. 평생을 누더기로 살았던 어른을 호화롭게 유택을 꾸며 모신다면 그 분을 그보다 더 욕되게 하는 일이 있을까? 그래서 법정스님은 만장도, 수의도, 관도 없이 화장을 하고 사리도 수습하지 말고 산골을 해줄 것을 지엄하게 당부 하셨다고 한다

 

  떠나면 그만이지요. 떠나신 뒤에는 더 이상 스님의 저서도 더이상 찍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살아서 하신 일이니 떠나고 나면 스님의 말씀도 더 이상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을까? 살아서 했던 일은 산 자의 몫이지만 살아있는 자가 가고 없는 이를 욕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떠나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스님이 떠나시면서 하신 마지막 걸식인 병원비의 정리를 보면서 '비구'의 뜻이 걸사乞士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이상 빌어서 살아야 할 최소한의 양과 그 보답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양을 잘 알아야 함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살아 오면 세상에 졌던 빚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그 빚을 갚은 만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출가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잿빛 염의를 입지 않아도 출가자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분도 있다. 한편으로는 출가자의 모습을 하고도 재가자보다 더 탐욕스런 삶을 살았던 이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할까?

 

  떠나면 그만이라 하지말고 늘 떠날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을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다지게 된다. 가지지 못해 '무소유'라고 위안을 삼기 보다 열심히 일해서 얻어지는 것을 세상에 나눌 줄 아는'무소유'를 실천해야 함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재물은 정재淨財로서 부끄럽지 않은 '소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소유'로서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언제 세상을 떠나더라도 뒤끝이 남지 않는 마무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련다.


  스님의 영전에 맑은 차 한 잔 올립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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