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009
차도 행복해야지요
보이차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어 한 두 편씩 모으다 보니 제법 많은 양이 쌓여 있다. 차가 백 편이 넘어가니 어떤 차가 있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마음먹고 차를 살펴보고 분류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어디에 어떤 차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면 보이차 마시기의 일 단계는 지나고 있나 보다. 무조건 보이차라면 막 모으다가 이제는 좀 가려서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차라면 다 차일까?' 하는 그런 판단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차 욕심으로 한 두 편씩 구입하다 보니 서재의 책들이 차에게 자리를 뺏기는 정도에서 이제는 책 보다 차가 많아졌다. 여기저기 방치하다시피 하다 보니 책도 차도 나를 나무라는 것 같다. 손에 늘 닿는 곳에 있어 행복에 넘치는 차와 구석에 밀려나서 제 몫을 못하는 차가 있겠기에...
문득 행복한 차와 불행한 차가 있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럼 그 차별이 왜 생겼을까? 우선은 아직 차를 제대로 모르는 저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차를 알기 전에 내 손에 들어와 제 가치를 몰라 잊힌 차는 불행한 상태일 것이다.
혀 끝의 느낌만으로 차맛을 감지하던 수준에서 이제 맛을 좀 알게 되었다. 입안에 찻물을 머금고 있으면 돌아오는 맛은 알겠는데 아직 목 넘김 후에 올라오는 맛과 향을 느끼는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맛을 아는 레벨에 맞게 분류를 해두어야 그 수준의 차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차 탓이 아니라 마시는 사람 탓인 차에 대한 차별', 그래서 같은 차라도 주인이 차를 아는 시기까지는 행복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즐겨마시는 차는 매일이다시피 변하지만 선택해서 마시는 그때만큼은 차를 안다고 볼 수 있겠다. 오늘은 어떤 차를 마셔야 할지 생각하다가 손에 잡히는 그 차는 행복할 것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잊힌 사람이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 하듯 차도 잊힌 처지가 되면 불행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아는 만큼이라도 차를 정리해 두고 제 자리에 놓아둬야겠다. 제 자리에 있는 차를 마시면 차도 사람도 행복해지는 차 마시기 되는 게 아닐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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