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분갈이로 이산가족이 된 난

무설자 2009. 7.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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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두었던 분갈이를 했습니다. 베란다에 있는 난 분 세개가 모두다 흙이 넘칠듯 합니다. 아마도 뿌리가 너무 자라서 분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분갈이는 2년 정도에 한번, 봄 가을이 좋다고 하는데 마음만 쓰고 있다가 한 여름에 행동으로 옮기니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화분을 넘칠듯 촉이 많아져서 화분은 두 개 사 두었습니다. 마음을 먹기는 두 개만 하기로 했는데 손을 대는 김에 세 개 다 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난분이 우리 집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뿌리가 너무 가득 차서 아무리 흔들어도 길다란 난과 분이 분리가 되지 않습니다. 흔들고 흔들어도 큰 입자로 된 배양토와 뿌리가 하나로 엉켜서 도무지 속수무책입니다.

 

문제는 세 분이 모두 그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베란다에서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이 아무래도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질 않습니다. 그래서 난분을 모두 챙겨서 아파트 화단으로 자리를 옮겨 대사를 칠 준비를 마쳤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난 분을 흔들고 가볍게 땅에다 두드려보아도 도무지 빠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뿌리가 분과 분리되지 않으면 분갈이를 할 수 없으니 그냥 두고 키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분 안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을 하기 위해서 분 하나는 깨뜨리기로 했습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화분은 깨어지고 화분을 반이나 채운 뿌리가 드러났습니다. 화분이라는 한정된 세계에서 그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이지요. 난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분 하나를 깨뜨려보니 나머지 두 분을 처리할 방법이 나옵니다. 난에게는 미안하지만 분을 화단 흙에 대고 세게 계속 두드리다보니 빠졌습니다. 빠진 뿌리를 살펴보니 깨뜨린 분의 뿌리가 제일 오래된 것인지 분 하나를 세 개로 나누어도 될만한 분량의 뿌리입니다. 베란다의 환경이 난이 커기에 적합했는지 해마다 꽃도 잘 피고 잎도 새 촉을 계속 내어 저런 상태가 되었나봅니다.

 

세 분으로 여덟 개로 나눌 수 있는 양이 되지만 화분은 네 개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다가 네개의 분 이외의 네 뿌리의 난은 아파트 화단에 심기로 했습니다. 양지 바른 곳이라 겨울이라 하더라도 얼지 않을 것이니 오히려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유를 준 것이지요. 화분에 담기는 난도 뿌리의 양을 적당하게 관리하여 이번처럼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지요.

 

부족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가 된다면 화분의 식물도 꼭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화분에 심겨진 식물들은 꽃이 필 땐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꽃이 지면 방치되어 말라 죽고마는 숙명을 피할 수 없는 신세가 대부분이지요. 마침 저같은 주인을 만나 목 마를 때 물을 제대로 먹기는 하지만 뿌리가 화분을 반이나 먹어버리도록 고통 속에 살게 하는 것도 좋은 팔자는 아닙니다.

 

화단에 심어진 난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네 포기로 나눈 난을 양지 바른 곳, 반 그늘 자리, 그늘이 지는 자리로 각각 다른 환경으로 심었습니다. 어떤 곳은 물이 잘 빠지고 어떤 곳은 좀 굳은 땅입니다. 그늘이 진 자리도 활엽수 아래이니 겨울에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뿌리를 깊이 내려서 필요한 수분을 스스로 취해야지요.

 

베란다에서 보호 받으며 자랄 난과 화단에서 제 스스로 자라야 하는 난을 두고 볼 것입니다. 내년 봄이 되어 어떤 난이 꽃이 피워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핀다면 어떤 꽃이 더 향기로울지 기대가 됩니다. 우선 서툴게 분갈이를 한지라 제대로 자라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2009,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