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81023
가을비를 바라보며
절기로는 깊어가는 가을인데 여름이 자리를 비워낼 줄 모릅니다. 아침 저녁의 선선함을 믿고 제대로 옷을 갖춰입고 나갔다가는 낮은 아직 여름이 버티고있는듯 땀깨나 흘리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해가 넘어가면 승학산 자락의 우리 집 창 밖으로 벌레의 노랫소리가 가을임을 알려줍니다.
오늘은 여름을 매듭 짓는 가을 비가 내립니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서 떨어지는 잎새를 보며 애를 태웠는데 이제 이 비가 제 색을 내게 해주겠지요. 차도 뙤약볕 아래 마시기보다는 가을의 찬 바람이라야 제 맛을 나게 하겠지요.
혼자 몸도 귀찮은 여름에 차 이야기를 하면 웬지 달갑잖습니다. 찬 바람이 불면 보고 싶은 사람을 떠 올립니다. 그와 둘이 앉아서 차 한 잔을 놓고 무슨 얘기든 오래토록 얘기하고 싶지요.
무슨 주제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사람이 그리워서 그리하고 싶은 게지요. 얘기가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사람과 차 한 잔하며 나누고 싶은 계절이 가을이 아닐런지요.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사람을 떠 올려봅니다. 죽마고우,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어릴 적 추억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철이 들어 의형제까지 맺었던 친구, 그도 이제 마주앉아 얘기를 나눌 그런 상대로는 멀어집니다.
그럼 누가 지금 제 앞에 앉아주길 간절히 바랄 수 있을까요? 떠올리려고 애를 써야 할,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건 없는 것일까요? 그냥 가을비가 내리는 오후에 차 한 잔 놓고 누군지 모를 그리운 사람을 기다려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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