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씨를 기대했건만 부처님께서 봄볕에 얼굴 탄다고 구름으로 하늘을 덮어준 듯 하루 내내 햇볕 없이 남해 길을 돌았다. 열다섯 분의 관음청신사회 도반들은 차창 밖으로 벌어지는 꽃 잔치에 눈이 즐겁고, 오가는 정담 속에 귀가 즐거웠다. 또 맛있는 점심공양으로 입까지 즐거웠으니 부처님을 뵈러가는 길에 보너스는 너무 푸짐했다.
남해의 망운산 화방사花芳寺, 호구산 용문사龍門寺와 고성의 와룡산 雲興寺를 돌아오는 일정으로 아침 일곱시에 낙동초등학교를 출발했다.
이른 아침의 출발이라 김밥으로 요기를 한 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는 남해대교를 지나고 있다. 관음포 이순신 장군 전몰유허가 첫 행선지가 되었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를 뭍에서 처음으로 안치한 곳이다. 노량 앞 바다를 바라보며 앞바다를 배로 가득 메웠던 전쟁터를 상상해 보았다.
벚꽃으로 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사찰순례 길을 열었다. 하동 쌍계사 말사인 세 절이 모두 임진왜란 때 승병의 활약이 대단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전란으로 불타버려 그 이후에 새로 지어졌다. 특히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화방사가 규모에 있어서는 더 커져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는 용문사에 더 많이 있다며 사무장의 자랑이 대단했다.
첫 방문지인 화방사는 전통사찰의 유명세와 함께 화방동산이라는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활발한 분위기를 신축되는 전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무성의한 공사를 통해 전통사찰의 고졸한 맛을 흩뜨리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망운산의 철쭉이 알려져 있으나 산행을 하지 못해 보지 못하고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음 일정은 남해읍을 지나 도착한 남해군립공원 호구산에 자리한 용문사이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이후 호국도량으로 지정되어 수국사守國寺로 불려졌던 유서 깊은 절이다. 경북 예천 용문사, 경기 양평 용문사와 함께 3대 용문으로 대표되며 철원 신원사, 선운사 도솔암과 같이 전국 3대 지장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절의 입구에 부도가 아홉 기가 있어 과거 선찰로서 선사가 많이 배출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당우를 재건하고 남해의 대표적인 사찰로서의 위상을 잡아가고 있다며 주지스님의 사찰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다음 행선지인 고성 운흥사로 향했다.
이제는 남해와 삼천포를 잇는 창선대교를 지나야 하는데 그 전에 들릴 곳이 있다. 미조라는 곳에 전국에 알려져 있는 공주식당이라는 유명한 음식점을 남해가 고향인 회장님보다 고문님의 보살님이 안내하신다. 메뉴는 갈치회와 멸치회이다. 멸치회야 부산에서도 대변에서 자주 먹지만 갈치회는 처음이라는 분들이 많다. 너무 맛있어서서 그런지 밥값도 자진해서 내 주시는 덕에 차량을 빌리는 바람에 심각한 적자였던 경비를 해결하게 되어 재정담당의 얼굴이 밝아지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행선지인 고성 운흥사이다. 이 절은 전통사찰의 고졸한 맛을 잘 살려 운치가 넘치는 요즘 보기 드문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유정스님이 승병 6000명을 이끌고 왜군과 싸우던 절이다. 작전을 위해 이순신 장군이 3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 8일이면 영산재를 올리는데 그날이 승병이 가장 많이 전사한 날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대숲을 따라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오른다. 너른 터에 기단 삼아 한단을 더 높인 위에 대웅전을 위시한 당우들이 열을 지어 앉아있다. 화방사 용문사와는 달리 지붕이 팔작이 아닌 맞배로 되어 그 고졸함을 더해준다. 기단도 자연석, 기둥의 초석도 자연 그대로의 돌을 써 소박함이 자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우리 옛 절이나 한옥들도 가능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집들이 많은데 최근 지어지는 사찰들은 지나치게 화려해 보인다. 세련되기보다는 겉멋을 부린 듯 치졸하게 지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 격은 한 수 떨어진다. 여염집 부산댁과 장사집 미쓰리의 차이라면 너무 한 표현일지.
기계 가공을 한 돌을 마구 쓴 데다 법식을 잘 알 지 못하는 목수들이 대충 지은 것 같아 스님들께서 안목을 높여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 쓰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집을 짓는데 품을 좀 더 들였어야 했는데 몇 백 년을 서 있어야 할 집에 제대로 된 장인을 쓰지 못한 데다 너무 바삐 지은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운흥사는 오랜만에 높은 점수를 줘도 될 것이다. 주지스님의 안목이 남다르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은 단체로 와서 대충 보고 가지만 다음 기회에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돌아보아야겠다고 벼르면서 돌아갈 길을 서둘러 잡아야 했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먼저 길머리를 잡아야 한다고 일행을 독촉했다. 지금 나서도 고속도로는 만원일 것이다. 회장님과 코스를 의논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걱정한 것보다는 길이 밀리지 않아 장유에서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도 가졌다. 남은 길을 막히지 않고 출발점이었던 낙동초등학교에 도착하여 다음 사찰순례는 관광버스 한 차를 꽉 채워서 다녀올 것을 다짐하면서 봄 사찰순례를 무사히 끝맺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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