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창窓은 어떤 존재이며 그 역할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집 안에서의 창은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환기, 채광, 일조, 조망의 목적을 가진다. 집 밖에서 보이는 창은 아름다운 외관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건축물의 창은 사람 얼굴로 보자면 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눈이 작은 사람보다 큰 눈을 가진 사람이 더 돋보이니 집에서 창도 기능보다 외관을 꾸미는 디자인 요소로 더 비중을 두게 된다.
집을 설계하면서 창을 어떻게 내야 하는 우선순위는 당연히 기능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실제 작업에서 설계자는 외관 디자인에 욕심을 내기 마련이라 외관 구성의 요소로 쓰이고 만다. 그러다 보니 전면을 모두 창으로 내기도 하고 동, 서쪽 벽에도 큰 창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창이 지나치게 넓으면 여름 햇볕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적정한 크기로 아늑한 실내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설계 작업에서는 생각 밖인 경우가 많다.
집을 쓰임새와 모양새로 나누어 보면
주택을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보면 모양새보다 쓰임새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설계자가 창을 외관을 만드는 요소에 비중을 두게 되면 쓰임새보다 보기에 좋은 모양새에 치중하고 만다. 쓰임새에 맞지 않고 모양새만 그럴듯한 그릇을 보자. 모양새가 맘에 들어 구입했는데 막상 써보다가 장식장이나 창고로 들어가 버리게 되는 그릇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창을 극단적으로 크게 내는 경우로 글라스커튼월을 들 수 있는데 Glass Curtain Wall이라는 영어 표기 그대로 벽면 전체를 유리로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건축물로 63빌딩을 들 수 있겠다. 이런 건축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63빌딩은 용도가 오피스지만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에도 쓰이고 있으니 지금은 보편적으로 외관 디자인 위주로 설치되고 있다. 글라스커튼월로 외관을 구성한 집은 벽은 없고 창만 있는 셈이다.

물론 글라스커튼월로 외벽을 삼은 초고층 건축물은 단열 기준에 맞고 태풍에도 안전하도록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십 층높이에 있는 아파트의 내 방 벽이 온통 유리라고 상상해 보자. 아무리 단열이 법적 기준에 맞춘 유리라고 해도 한 여름 햇볕 열기를 차단하는 건 무리다. 또 동향이나 서향의 햇살이 집 안에 들면 그 피로도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축물 전체가 유리로만 되어 있다면 외관이 유별나서 작품 운운하는 멋진 건축물로 이름을 얻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설계자의 명성 뒤에 사용자인 입주민은 벽면이 온통 유리인 집에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창과 벽의 경계가 없는 집에 살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가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수십 층높이에 있는 내 방의 벽이 온통 유리창이라면...
밖에서 보이는 창, 안에서 내다보는 창
집 앞에 멋진 경치가 있다면 조망을 즐기기 위해 큰 창을 낼 것이다. 특히 부산에는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향을 따지지 않고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조망권 프리미엄은 아파트의 분양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주거 만족도도 그만큼 긍정적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조망이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동향이나 서향 햇볕을 감수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지 않은가?
좋은 집으로 평가하는 우선순위는 분명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다만 보고 살면 집에서 행복해지는 게 아닐 텐데 거실에도 방에도 내가 머물 자리가 마땅치 않다. 창으로 밖을 보지만 벽이 있어야 편히 쉴 수 있는데 어디에 몸을 내려놓고 쉴 수 있을까? 거실처럼 큰 공간이라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좁아터진 내방에서는 감당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남쪽 창을 크게 내야 한다면 여름의 햇볕을 어떻게 가릴 것이냐를 꼭 따져야 한다. 동서 측에는 조망창을 크게 내고 싶더라도 아침저녁의 일사각이 낮은 사계절 햇볕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무겁고 차가우므로 되도록 작은 창이어야 한다. 밖에서 보이는 외관은 설계자의 관심이지만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식구들은 내부 공간이 쾌적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입장 차이는 설계 단계에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집을 지으면서 가장 유념해야 하는 걸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겨울에 남향 햇살이 집안에 가득 들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대를 나누어 햇살을 살펴보면 남향에서 들 때 가장 명량하다. 동향 빛은 날카롭고, 서향 빛은 너무 짙어서 겨울에도 부담스럽다. 북향 빛은 차가워서 우울한 기분이 드니 우리집에는 가능한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 겨울에 남향에서 집 안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느냐의 여부는 길택이 되는 필수 조건이라고 본다.
집에서 사방으로 내는 창에 부여해야 할 역할
천정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통창과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수평 창, 환기를 고려해서 고창으로 내야 하는 경우도 잘 생각해서 선택해야 한다. 맞통풍을 고려해서 창을 내지 않으면 환기는 물론 얼굴을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결도 포기해야 한다. 여닫는 방법에 의해서도 집을 쓰는 쾌적함이 달라지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건축주는 나와 가족이 살 집이니 창의 크기와 위치를 설계 과정에서 잘 살펴 결정해야 집을 짓고 후회하지 않는다.
집에서 공용공간인 거실과 식당 등은 창을 크게 내어 외부로 확장되는 효과를 노리는 것도 좋다. 차경借景이라 부르는 외부의 경관이 창을 통해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는 집이 더 넓게 보이게 한다. 반면에 부부 침실은 안락한 수면을 위해 너무 큰 창을 내는 건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은 잠만 자는 게 아니니 창은 적정한 크기로 설치해야 한다.

창과 벽은 안팎을 가르는 경계인데 창은 안에서 밖을 보는 통로이고 바깥에서는 집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 외관을 이루는 요소로서 보이는 창은 집 밖에서 보는 그림이지만 집 안에서는 식구들의 일상을 담는 그릇으로서 필요한 역할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밖에서 보이는 외관의 이미지를 우선해서 집에서 지내는 일상을 뒷전으로 미루는 설계는 집을 짓는 목적과는 다른 방향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뭐라 해도 밤에 불이 들어올 때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집일지라도 밤에 불이 꺼져 있으면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작은 집일지라도 어둠이 깔리기 전에 창마다 불이 켜져서 식구들이 집에 돌아오는 걸 반기는 장면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있을까? '우리집'이라는 식구들의 일상을 담는 그릇의 쓰임새에 부합할 수 있어야 창에 불이 들어오는 집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집이라도 밤에 불빛을 담아내는 창이라야 식구들의 삶도 빛나는 것이다.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이면 불 밝혀진 창은 귀가하는 식구들에게 등댓불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슥한 밤 시간에 마당에 나가 집 안을 바라보니 아이들의 방에 불이 밝혀져 있고 책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 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원문 읽기 :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228
[김정관 더봄] 집에서 창(窓)은 불이 들어와야 빛나는 존재 - 여성경제신문
집에서 창(窓)은 어떤 존재이며 그 역할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집 안에서의 창은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환기, 채광, 일조, 조망의 목적을 가진다. 집 밖에서 보이는 창은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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