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내 친구 정경진, 이제 편히 쉬거라

무설자 2019. 12. 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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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경진아, 이제 편히 쉬거라




쓰레이트 지붕 아래 다락방에서 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공부를 했다는 얘기를 고시합격하고 나서 들었었지.
네 고향 남해군수로 금의환향하겠다며 경남으로 첫부임지에 가면서 꼭 좋은 공직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이 생생하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첫 꿈을 접고 국무총리실로 갔다가 부산에 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한 동네 삼총사로 어울려 다녔던 우리 셋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실업계고등학교를 가야만 했지.
집안 형편으로 너와 환이는 부산상고, 나는 부산공고로 갔었지만 너도 나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었니?
너는 은행에 입사해서 야간대학을 다니며 고시공부까지 했으니 너처럼 지독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공직에 있으면서도 요직을 두루 거치며 아무 탈없이 부산시 행정부시장으로 퇴직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네 결혼식에 내가 사회를 보았으니 내 딸 결혼식 주례는 꼭 해야한다는 부탁에 당연하다며 맡아 주었지.
담 하나를 두고 살았던 우리는 친구보다 형제라고 해야 하는데 너의 공직 생활은 먼 사람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부시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날 무렵에 초등학교 친구 몇이 자주 보면서 이제는 자주 보겠구나 생각했었다.
동아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오면서 네 연구실에 보이차 한편 가지고 달려가며 얼마나 좋았는지 아느냐?
내 사무실 밑에 카페에서 보면서 마실가듯 만나게 되는구나 했었는데.


그런데 부산시장이 되어보겠다는 네 뜻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못했었다.
구청장에 출마하려는 얘기에는 친구들도 좋아했었지.
왜 정치판이 내 친구를 유혹해서 가지 않아야 될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원통하고 분하기 이를 데 없다.


너의 선거캠프에 참여하면서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소탈하고 충실하게 자신의 일에만 전력투구한 너는 비정해야 하는 정치인에 어울리지 않단걸 느꼈었다.
결국 너는 당에 한번, 세상에 또 한번 버려졌고 병마가 덮치고 말았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떠나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더라.
때마침 나도 큰 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졌는데 너는 전화 한통 없어 섭섭한 마음에 원망도 많이 했었다.
너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었던 게 언제였는지 연락이 끊어지면서 너도 나처럼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고 소식을 들었다.


나도 그런데 너도 그랬구나...피장파장이라며 코웃음을 쳤었다.
그런데...그런데...암이었었다니.
너에 대한 섭섭한 마음만 있었지 그 원통한 세상의 비정함에 몸부림치면서 병마에 힘들어 하는 걸 몰랐구나.

이제 이 생에서 할 일은 다했으니 미련없이 떠나라.


더 하고 싶었던 일은 있었겠지만 남은 일은 무에 있으랴.
형제처럼 지냈었던 어린 시절, 떨어져 살았던 긴 세월...이제 영원히 이별이구나.
친구야 미련일랑 두지말고 편히 쉬어라.





2019. 12.5

내 친구 경진이 영전에 차를 올리며


김 정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