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을 짓고 후회할 열 가지
– 세 번째, 남향이냐 조망이냐
부산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는 거래가에서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한다. 단독주택 용지도 바다가 보이면 그렇지 않은 땅보다 더 높은 시세에 거래된다고 하니 조망권은 곧 돈이라고 할 수 있다. 해운대에 백층이 넘는 아파트가 지어져서 준공절차가 진행 중이다.
백층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앞바다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 환상적인 풍경에 매일 취하는 일상을 보내며 살고 있을까? 바다는 천변만화라고 표현할 만큼 오묘한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있는 집에 살아본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할 분이 많을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염분이 섞인 해풍과 해무가 일상생활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해운대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많은데 창문을 개방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아파트는 자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음식도 한정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조망을 우선해서 지은 해운대의 초고층 아파트는 바다를 보고 산다는 특권에 반해 제한되는 생활 여건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눈에 팔려 경관이 좋은 집을 찾는다면
오감 중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는 눈이라고 한다. 오직하면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했을까? 외부의 정보 중 70% 정도를 시각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정도로 다른 감각에 비해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친 점수를 주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시각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민감한 만큼 금방 식상해져서 눈은 끊임없이 다른 대상을 찾는다. 아무리 경관이 좋은 터를 찾았다고 해도 눈길이 머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경관이 좋은 터에 집을 지어서 누리는 시각적인 즐거움은 아주 한시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에 의한 판단으로 집터를 찾고, 외관에 힘을 주는 디자인으로 집을 짓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좋은 집이라는 기준을 세우는데 있어 눈은 오감 중에서 가장 후순위로 두어야 한다.
삼대가 적선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남향집
집터의 조건에서 배산임수라는 좌향坐向을 우선시 한다. 든든하게 뒤를 산이 받쳐주고 앞으로 아늑하게 열려 있어야 좋은 집터라고 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터는 없다고 하지만 남향이 앞으로 열린 조건은 꼭 갖추었으면 좋겠다.
동서향 집은 계절에 관계없이 햇볕이 집 안으로 들이치지만 남향집은 계절을 가려 든다. 햇볕이 필요한 겨울에는 실내로 깊숙하게 들어오지만 여름에는 처마 아래에 그친다. 동향이나 서향집에 살아본 사람들은 여름에 집 안으로 무작정 드는 햇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 것이다.
집을 짓는데 남향을 우선하는 건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 할 것이다. 삼대가 적선을 해야 남향집을 얻을 수 있다고 했을까? 남향한 터를 얻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경관에 팔려 동이나 서로 향하는 집을 짓는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명陽明한 집이 길택吉宅
집을 표현하면서 양명하다는 건 집안에 건강한 기운이 가득하다는 얘기이다. 단독주택에서 무작정 햇볕을 집안으로 들이면 陽의 기운이 너무 과하게 된다. 그래서 한옥은 처마를 길게 내어 집 안으로 들이는 햇볕이 조절되도록 했다.
한옥은 백토를 깐 마당에 햇볕이 내리면 반사된 고운 빛이 집안으로 들어 양명한 기운이 가득 차게 된다. 겨울에 아무리 햇볕이 좋다고 해도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당에 반사시켜 창호지를 거쳐 처마 아래에 골고루 들도록 했다.
볕을 조절해서 집 안에 들여야 양명한 분위기가 가득한 길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햇볕을 잘 받아들이려면 남향으로 열리도록 하고 개구부 배치를 잘 해서 빛을 조절하면 좋겠다. 남향에서 드는 햇볕은 집의 기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을 앉히면서 경관을 보느냐 남향을 받아들이느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경관을 보고 짓는 집은 오래 가지 않아 눈에서 멀어지고 만다. 남향 햇볕을 외면한 집은 양명한 기운을 가지지 못하니 아파트보다 못하게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내면을 살피지 않고 인물만 보고 선택한 배우자처럼, 경관에 팔리고 외관에 치중한 집에서 사는 게 맘에 찰리 없을 것이다. 여생을 단독주택에서 보내려고 지었건만 편치 않는 집이 되어 있다면 이를 어쩌랴.
-DAMDI E.MAGAZINE 연재중 (2019,11 )
다음 편은 '외장재료의 선택이 집의 수명을 좌우한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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