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차 시음기
명품, 오건명 작가의 용단호로 '98 봉패 숙병을 우리다
보이차를 마시는 분들이 평소에 긴압차를 어떻게 두고 마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두 종류를 가지고 마신다면 해괴하여 작은 항아리에 두고 마시겠지만
열 종류 이상을 가지고 마신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지요.
항아리를 열개 이상 두고 마시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한지를 잘라서 큰 봉투 작은 봉투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숙차만 하더라도 스무 종류 이상 가지고 있어서 긴압된 채로 봉투에 넣어서 보관합니다.
저녁마다 오늘은 무슨 차를 선택할까 이 차 저 차 둘러보는 것도 차를 마시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봉투 윗쪽에 보관한 보이차의 이력이 있습니다.
선택된 차를 보이차칼로 뜯어서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비닐봉투에 넣어서 보관했는데 요즘은 시간 나는 대로 한지로 봉투를 만들어서 바깥에는 그 차의 이력를 써둡니다.
차 이름과 구입하거나 증정한 분의 이름과 시기, 가격 등을 메모하는 것이지요.
이제 차를 마신지 몇 년 되다보니 차나 다구를 구입할 때 꽤 신중해집니다.
이력이 좀 계급이 좀 높아지는 것인지 차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차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노차보다는 숙차를 즐겨 마시기에 정말 좋은 숙차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바람이 답으로 오는 것인지 명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숙차를 여러 종류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초기 7581숙전과 90년대 초기 여러 종류의 숙차들입니다.
경발효 숙차의 단맛만 찾아서 마시는데 주력하다가 진년 숙차의 묵은 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소장한 숙차 중의 대장자리를 다투는 차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98년도에 생산된 운남봉경차창의 봉패(鳳牌)숙병입니다.
이 차를 같은 시기에 구입한 명품 자사호, 오건명 작가의 주니 용단호(200cc)와 소개합니다.
이 자사호를 만든 오건명 작가는 오래전에 사라진 자사호의 제작기법을 되살려
새로운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선비풍의 단아함과 섬세한 표현으로 전수공 작품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자사호를 직접 보면 알 수 있습니다.
群鷄一鶴
용단호의 포~스
날아오르는 학의 섬세한 디테일
나무에 달린 잎사귀까지 표현한 작가정신..
돋을 새김으로 표현한 이 정교함, 전수공 자사호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명품 숙병을 명품 호로 우려마시는 호사를 부려봅니다.
아직 차도 호도 모르는 수준이지만 이 차와 호를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니 큰 복이지요.
추천하는 대로 공구에 참여해서 얻어졌지만 마침 천정부지로 오르는 환율에 공구를 주관한 그분은 금전적인 손실이 컸다고 합니다.
우리 돈을 모아서 위안화로 송금을 했으니 말입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을 이 기회에 다시 전합니다.
우선 오건명 작가의 용단호를 구경해 보시지요.
능력 있는 작가의 전수공 작품의 진수가 느껴지십니까?
직접 보시고 만져보신다면 아마 그동안 접해온 명품호에 뒤지지 않는 포스(?)를 느끼실 것입니다.
‘98 봉패 숙병을 오건명 작가의 용단호로 우려 봅니다.
봉패숙병을 만든 봉경다창의 전신은 운남중국차업 유한공사 순녕실험다창(云南中国茶业股份有限公司顺宁实验茶厂)이며
봉경의 원명은 순녕(順寧)이었고 옛 이름은 포문(浦門), 경전(慶甸)으로 불리었습니다.
해발 900~1300미터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저위도 높은 지역의 입체적 생태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란창강이 지나가고 수풀이 우거져 원시밀림을 이루고 있어 야생,반야생, 재배형의 오래된 차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답니다.
란창강변의 우량한 생태환경과 품질이 독특한 봉경대엽종 원료와 유구한 차잎 재배 역사는
고품질의 “鳳”표 보이차들을 만드는데 최고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는 그 봉패 숙병의 ‘98년산입니다.
10년된 봉패가 낡은 포장지로 대변합니다
한지 봉투에서 꺼낸 봉패의 수줍음....^^
차를 5g정도 떼내어 200cc 용단호에 넣었습니다.
사실 200cc차호를 쓸 일은 잘 없지만 오늘은 차호 자랑삼아 써봅니다.
뜨거운 탕수를 호의 삼분지 이만큼만 부었습니다.
탕색은 10년을 넘어온 차의 이력만큼 검붉군요.
사실 검은 색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아니지만 요즘 만든 경발효차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오래된 숙차들은 이 색이 거의 표준이더군요.
저 맑은 탕색을 보십시오~~~
맛을 봅니다.
요즘 경발효 숙차들은 떫은맛을 좀 감춘다면 그냥 마시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잘만 고른다면 단맛이 잘 어우러진 마실만한 차도 많습니다.
그런데 입안에 꽉 차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이 항상 느끼는 아쉬움이지요.
그 무게가 바로 보이차가 지니는 세월인가 봅니다.
3탕과 5탕의 탕색...좀 더 검은 빛이 숙여졌으면...하지만 맛은 참 좋네요^^
요즘 10여년 가까운 세월을 담은 숙차를 마시면서 진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익은 차라야 하지만요.
다행히 봉패 숙병도 그러하거니와 비슷한 시기에 구입한 90년대 초기 7581숙전도 그 맛에서 보관되어온 좋은 환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엽저는 좀 불만이군요. 하지만 목질화된 딱딱한 잎은 없습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다 만족할만한 맛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심심한 맛 밖에 나지 않는 차는 태생이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이 봉패숙병은 기분 좋은 쓴맛에서 묘한 향이 입안에 감돕니다.
좋은 찻잎으로 제대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10년 가까운 세월이 무게로 입안에 담기는 그 맛,
거기에다 좋은 태생의 찻잎이 내어놓는 기분좋은 쓴맛에 실린 묘한 향은 자신의 정체를 표현하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아껴서 마셔야겠습니다.
두 편을 구입했는데 한편을 도반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다 마시고 나면 다시 구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이 차를 추천한 분이 다시 권하는 차가 있다면 무리가 가더라도 양을 좀 많이 확보해야겠습니다.
진년차는 구입 시기를 놓치고 나면 다시 손에 두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좋은 진년 보이차를 착한 가격에 손에 넣는다는 건 기회인데 이번에는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명품 자사호에 우린 명품 숙차 한 잔, 인연이 되는 분과 함께 마시고 싶습니다.
차 마시는 강아지, 우리 몽이가 차를 내는 제 곁에서 ...차 마시는 집 삼년이면 어떤 풍월을 읊을까요? ㅎㅎ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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