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예찬 김 정 관 올해는 절기로 입추가 지났는데도 장마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기억 창고 한쪽에서 통도사 극락암 선방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찾아냈다. 그 날은 예고도 없이 비가 쏟아졌다. 절에 머물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요사채 처마 아래로 모여 들었다. 나도 툇마루에 걸터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구름이 산허리를 두르고 절을 에워싼 대밭의 댓잎과 빗줄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처마 바깥으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지만 축담 안쪽과 툇마루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안전지대이다. 만약에 처마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을까? 불당 안에 들어가 앉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