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단독주택 설계 계약을 하고 집터를 살펴보니 집을 지으면 곤란한 땅이었다. 그 땅은 산지를 택지 조성해서 만든 단독주택단지였는데 주변에는 아직 집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였다. 택지의 최상부에 위치한 땅이라 동쪽으로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분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필지의 동쪽과 남쪽 필지에 집이 지어지면 바다 전망이 없어지게 되고 남향 햇살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게 되는 미래가 보였다.
설계 계약 전에 건축주와 집을 짓게 된 연유를 얘기하다 보니 형제의 의까지 맺어 특별한 관계로 설계를 시작한 상태였다. 만약에 집터의 조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건축주에게 전하게 되면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바다 전망과 남향 햇살을 다 포기해야 하는 그런 땅에 집을 지어서는 곤란하니 건축주가 집 짓기를 포기한다면 내 일이 무산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실직고해야 할까?
집터를 찾는데 5년? 그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하는데
우리집을 지어 살고 싶어도 마음에 드는 땅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살고 싶은 지역을 정하기도 어렵지만 동네 분위기도 파악해야 하고 이웃도 좋아야 한다. 이웃이 좋아서 일부러 집값을 더 쳐주었다는 옛날이야기를 흘려들으면 안 된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이웃은 담장을 사이에 둔 가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장 편하게 집터를 구할 수 있는 건 토지구획정리로 조성된 택지이다. 그런데 이런 곳은 땅을 쪼개서 파는 목적으로 조성된 땅이라 마을, 동네라는 정감을 얻기는 어렵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땅은 마음이 선뜻 가지 않고 오래된 마을이 좋지만 이웃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집터를 정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짧아야 5년, 십 년이 걸렸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도시에서 시골로 생활권을 옮겨 살면 가장 힘든 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겪는 외로움이다. 또 마을 사람과 쉬 어울리지 못하거나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 생활은 이웃이 있어도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게 안 되는 게 시골 생활이다.
단독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게 집터를 찾는 일이라는 건 집을 지어봤던 사람만 알 수 있다. 아파트는 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을 팔고 옮겨가면 그만이지만 단독주택은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집 짓기보다 집터를 찾는 일이 더 어렵고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살다가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누구라도 살고 싶은 집으로 지어야 한다.
집터는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남향해서 동서로 긴 땅
흔히 집터의 조건으로 꼽는 말이 배산임수이다. 땅의 배후에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흘러야 좋다는 것이다. 이런 터의 조건은 풍수지리에 부합하는 기본이 된다. 산에서 내려오는 땅의 기운은 물을 건너지 못해 머무는 곳을 혈穴자리라고 한다. 땅의 기운이 모인 자리를 명당이라고 하는데 그곳에 집을 지으면 좋다는 것이다.
물은 하천이나 개울을 말하는데 도로도 이에 속한다. 집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길이 있으며 남향으로 열리고 대지 모양이 동서 방향으로 길면 집터로는 가장 좋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조건에 부합하는 땅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이다.
이 조건 중에 한두 가지만 취해 집터를 찾아야만 집 짓기의 가장 큰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우선 조건으로 집터는 도로보다 높아야 한다. 그다음은 전망보다 남향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하는 건 포기하면 곤란하다. 전망은 집에서 살다 보면 금방 눈에 익숙해지지만 남향 햇살은 안락하고 건강한 주거 생활을 보장하게 된다.
남북으로 긴 대지라고 해도 집은 남향 햇살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남향 햇살이 마당에 떨어져야 양명陽明한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집터의 조건으로 동서로 긴 모양의 땅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집 뒤에 배후가 될 만한 산이 있고 도로가 집 앞으로 나 있으며 동서로 긴 모양을 가진 땅이면 집터로는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집터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인접 필지를 추가로 구입하니
집터의 조건이 바다 전망이 문제가 아니라 남향 햇살마저 얻기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건축주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해결책을 물어왔다. 그 해결책은 남북으로 긴 대지 조건을 동서로 길게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택지지구는 동서로 경사진 땅이어서 최상단의 두 필지를 구입했는데 앞의 두 필지 중 한 필지가 들어오면 막힌 집을 열리는 집으로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축주는 앞에 있는 두 필지 중 한 필지를 구입하겠다고 결정을 했다. 다행히 도로 끝에 있는 필지를 구입할 수 있어서 문제는 해결되어 설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었다. 만약 설계가 중단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주어진 대지로 계속 진행했다면 어떤 집으로 지어졌을까? 또 지어진 집에 살고 있는데 인접 필지에 집이 들어서서 전망도, 남향 햇살도 가려버리는 상활이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집터를 결정하기 전에 건축사의 자문을 받으면 과오를 범하는 걸 피할 수 있다. 집터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집으로 지어질 수 없는 여건이라면 집 짓기를 미루어야 할 것이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려하는 것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대지 여건이 온전한 주거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되면 그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은가?
아직 주변에 집이 지어지지 않아서 바다를 볼 수 있고 남향 햇살이 집안에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땅이었다. 지금은 바다 전망이 있는 쪽에 앞집이 들어섰고, 남향 햇살을 가릴 남쪽 대지에 4층 빌라가 들어섰으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다. 이제 남향 햇살이 마당에 가득하고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건축주와 식구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집터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남향집에 사는 사람은 삼대적선을 했을 것이라고 할까? 집터가 조건에 못 미치더라도 설계로 보완할 수 있지만 좋은 터의 조건을 갖춘 땅이라도 설계가 충실하지 못하면 부실한 집을 지을 수도 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땅은 없으니 기본 조건만 따져 집터를 정하고 설계를 하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어야 후회하지 않을 집짓기를 할 수 있다.
한옥은 조선시대 집이라는 유물이 아니라 이 시대의 단독주택에도 그 흐름이 이어져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집이다. 한옥은 건축물이 반, 마당으로 통용되는 외부 공간이 반이라서 집터를 정하면 집짓기는 반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계획이 섰으면 집터를 보는 단계부터 건축사의 자문을 받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집짓기는 집터를 찾을 때부터 건축사와 함께.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단독주택 인문학' 13
원문읽기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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