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싱글맘이 짓는 동녘길 단독주택 8 - 넓이보다 깊은 공간의 거실과 주방

무설자 2023. 12. 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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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는 없었는데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며 얻게 된 공간이 거실이다. 또 주방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식탁을 쓰게 되었고 이제는 가전제품과 다름없이 나날이 변신을 거듭하는 주방 가구가 눈부시다.  거실과 주방을 하나의 공간으로 쓰게 되는 데는 가족 구성에서 주부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싱크대의 변화는 주방을 쓰는 행위를 힘든 노동이 아닌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즐거운 일로 바꾸고 있다. 가스레인지가 전기레인지로 대체되면서 아일랜드 스타일로 거실을 바라보는 자리로 나오게 되었다. 요리가 벽을 바라보며 하던 외톨이 작업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게 되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 되고 있다.     

 

주방은 냉장고와 수납장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사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공간 분위기를 주도하게 되었다. 부엌데기라는 말은 이제 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고 식구 누구나 기꺼이 쓰는 공간이 주방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집에 정착되지 않은 가구는 식탁이다. 조리대에 붙인 식탁이 아니라 독립된 가구로서의 탁자의 자리가 필요하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경사지붕이 있어서 얻을 수 있는 거실의 깊은 공간감이 좋은 집이다

 

주방에 일은 없고 즐거운 시간이 있다     

 

동녘길 주택 공용 공간은 크게 거실 영역과 주방 영역으로 나뉜다. 욕실과 맞닿은 벽에는 냉장고와 수납장의 자리가 된다. 주방에서 쓰는 그릇과 조리 기구는 수납장에 들어가 디자인된 벽면만 보이게 될 것이다.    

  

윗장이 없이 오픈된 싱크와 조리대는 상판에 여유가 많다. 커피머신, 믹스기 등 가족의 즐거운 일상을 지원하는 기구가 놓일 것이다. 아일랜드 조리대의 전기레인지에서 된장찌개가 끓고 식구들은 탁자에 앉아 즐거운 식사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식탁이 아닌 탁자는 우리집에서 가장 많이 쓰는 가구이다. 엄마는 커피, 아이들은 주스를 마시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손님이 오면 탁자에 마주 앉아 와인 잔을 부딪히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동녘길 주택 평면도-주방과 거실의 상부는 경사 지붕 아래 공간이 있어 깊은 공간감을 살릴 수 있다

 

거실과 이어지는 데크, 작은 마당     

 

아파트의 거실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TV 시청실이 되어 버렸다. 소파는 TV를 향한 일렬 시청석이 되어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 보지 않게 되었다. 채널 주도권을 가진 식구 한 사람의 자리로 쓰는 집이 많다.     

 

동녘길 주택은 벽면에 TV 대신 큰 그림이 걸려있기를 소망한다. 또 소파는 식구들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놓았으면 좋겠다. 혹시 TV로 함께 볼 프로그램이 있다면 스크린을 내려서 볼 수도 있으니 TV 시청실은 아니었으면 한다.     

 

거실에서 마당을 바라보면 그늘이 깊은 큰 나무가 보인다. 나무 아래에는 목재 데크가 있어 그늘 아래에 편안한 의자를 놓고 큰 아이가 책을 읽고 있다. 막내는 친구들과 잔디 위로 뛰어다니는지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은 이벤트처럼 어쩌다 생기는 게 아니라 소소한 일에 감사함을 느낄 때 늘 우리와 함께 한다.   

     

작은 집에서 누리는 깊은 공간감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는 넓다.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더 넓은 집으로 쓰고 있다. 넓은 집은 단지 넓을 뿐 공간이 주는 깊이는 없다. 그냥 넓은 집이 되었을 뿐이다.      

 

동녘길 주택은 작은 집이다. 그렇지만 경사 지붕 아래 공간이 거실과 주방 위로 더해져 풍성한 깊이가 있어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소리 좋은 오디오를 들인다면 얼마나 깊고 여운이 좋은 연주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집안에서도 밖으로 눈길이 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느끼게 되는 넉넉한 공간의 품격은 넓이가 아닌 깊이로 얻을 수 있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눈 감고 느껴지는 공간이 주는 푸근함은 천정 높은 집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지산심한재-서른 평의 작은 집이지만 거실 공간의 깊은 공간감으로 풍요로운 주거 생활을 누리게 한다

 


               

‘우리집’이라는 어감을 온전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식구’로 살아서 행복하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집에서 우리 식구와 함께 살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동녘길 주택을 짓는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부산다운건축상,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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