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아내

무설자 2005. 8. 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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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아픕니다. 이곳저곳 잔고장이 생기더니 이제는 상태가 그러려니 하고 버티기에는 한계에 왔나봅니다. 동네 의원에 진료를 받다가 아예 큰 병원에 검진예약을 하고 왔습니다.

 

올해가 결혼 20주년입니다. 20주년에는 꼭 해외여행을 같이 가자고 한 약속도 1박2일 여행으로 간단히 때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건축사 자격증만 취득하면 호강은 못시켜주더라도 고생은 끝을 내줄 것이라 믿었던 아내에게 늘 새 고생꺼리만 만들어왔던 지난 시간입니다.

 

다 내 탓이라는 생각을 마음에서 표현으로 옮기는 철이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병원에 스스로 검진을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큰 나무를 쳐다봅니다. 주위에 다른 나무가 없는 데 한두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다가가서 쳐다보면 옹이가 군데군데 박혀있고 상처가 아문 흔적이 흉하게 나 있습니다. 세월을 이기고 홀로 서기위한 수많은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흔적은 어떤 모습으로든 어느 때가 되면 나타나게 됩니다. 그 흔적이 몇몇 사람에게는 영광스런 훈장이나 박사학위나 높은 지위, 재산으로 자랑스럽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주름살, 흉터, 흰머리, 질병으로 보이게 됩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보면 보통사람들의 살아온 흔적을 이야기꺼리로 만들어 방영이 됩니다. 그것도 여덟시에서 아홉시 사이의 황금시간대를 방영시간으로 택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에는 보통사람들의 그 흔적을 만든 과정이 화려한 영광으로 종결되는 내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여건의 삶을 잘 받아들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영광도 어쩌면 그 뒤의 시간을 위한 과정일 뿐이며 보통 사람들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또한 끝없는 과정일 것입니다.


 

 

성현으로 길이 추앙받는 우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공자님도 당신들의 생전에 편안하고 칭송을 받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 속에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신 일생 그 자체가 길을 떠돌며 방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분들의 영정이나 조상彫像이 화려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집에 모셔져 있지만 그 모습이 그 분들이 살았던 고난 그 만큼일지 모릅니다. 그 모습은 금으로 그려지고 조상을 만들어 금칠이 되어 그 앞에 꽃, 향, 음식 등으로 공양을 받지만 경전에서 보이는 그분들의 삶은 우리의 어려운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다투고 사는 우리는 한없이 힘들어하며 신세한탄에 높은 하늘과 너른 세상을 살필 여유마저 가지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돌아보고 미래를 기약하며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여건만 가질 수 있어도 성현의 그 삶과 닮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렇게 얘기하는 저의 뜻을 받아들여 열심히 실천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제가 없는 자리에서는 눈물을 흘릴지언정 힘든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말만 앞세우는 것이 더 많았던 제게 종부로서 집안을 살피고 호스피스가 되어 힘든 이를 돌보는 등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으로 오히려 제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큰나무에 옹이나 흉터를 만든 것처럼 아내에게는 육신의 질병을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이라 눈앞에 닥치니 가까이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나 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살갑게 손 한번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아쉬워집니다. 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되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 약이 되었을 것인데 그 사랑이 부족해 이처럼 몸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 제가 아내에게 더 이상 말로 건네는 논리적인 삶에 대한 얘기는 허울일 뿐일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밥 먹었냐? 무엇 하느냐’라는 인사치례의 전화통화가 훨씬 영양가가 있어 보입니다. 육신을 고치는 치료는 병원에서 하겠지만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료는 제가 해야할 것입니다.


 

 

아내의 아픔이 우뚝 선 한 그루 큰 나무의 옹이같이 이겨낼 수 있는 훈장이 되기를,

 

제게는 가장 편한 도반이자 친근한 스승이기에 이제부터 제가 바치는 공양을 기꺼이 받을 수 있기를,

 

열심히 살아온 삶을 기꺼이 세상에 회향하는 보살의 길을 더 열심히 따를 수 있기를 불보살 전에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