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부산 이입재

글로 풀어쓰는 '이입재'-2010 부산다운건축상 은상수상작

무설자 2010. 10.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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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풀어쓰는 이입재二入齋

 

2010 부산다운 건축상 은상 수상

설계 : 도반건축사사무소 김 정 관

시공  : 용우하우징        이 창 호

 

집에서 행복에 이르는 두 가지의 입장-二入,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생각하며 만든 집, 이입재二入齋

 

이입재 전경:뒤로 부산시민도서관이 보인다

 

이입(二入)이라는 말은 중국에 선종을 일으킨 달마의 선어록인 《이입사행론》에 나오는 말이다. 二入四行, 선정에 드는 두 가지 길과 네 가지 행동을 말한다. 이입(二入)은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이른다. 이입(理入)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한 입문을 뜻하고, 행입(行入)은 이입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통한 입문을 뜻한다.

 

화엄경 법성게에 이런 구절이 있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고

하나가 곧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이네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 담겨 있으니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마다 그와 같다네."

 

집이라는 ‘하나’를 만들면서 그 안에 담아야 할 것을 얼마나 생각할 수 있을까? 집은 가구를 담고 사람만 담으면 그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삶을 아름답게 담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집이라는 하나에 담아야 하는 건 일상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며, 일상과 집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우리집'이라는 행복이 피어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

 

이(理), 눈으로 보는 집으로서의 모양, 그리고 내부공간이라고 이를 각기 기능을 담은 이름을 가진 방들을 구성하면 집이 된다. 그런 집은 어디에나 있는 집이다. 이치에 맞는 집이란 어떤 집일까? 행(行), 그 집에서 사람이 산다. 어떻게 사는 것이라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될까? 내가 살 집,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기에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야 하며 그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

 

마당에서 보는 이입재 야경

집에서 이룰 수 있는 행복,

그 행복에 이르는 두 가지의 길을 담은 집이라 이입재(二入齋)라 이름을 붙이고 집을 만든다.

 

이입재의 사랑채 공간인 거실이 정자처럼 마당으로 나있다

 

집이라는 하나에 둘이란 무엇인가? 태극이 하나라면 그안에 담긴 음양의 조화라고 본다.  서로 다른 둘이 조화롭게 담겨있어야 온전한 하나가 된다.

 

하나에 서로 다른 둘이 담긴다. 남녀가 부부가 되고 부모와 자식이 있으며 집에 머무르는 사람과 주로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고 또 주인이 있고 손님이 있다.

열린 공간이 있고 닫힌 공간이 있다. 열린 공간은 마당이고 거실이며 주방식당이다, 닫힌 공간은 내정이고 침실이며 서재. 아이들의 방이다.

 

이렇게 하나에 담긴 상반된 둘이 조화로울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하게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남편, 부모, 주인이 중심이 되는 집은 아내, 자식, 손님은 가장자리로 밀려 있으니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양(陽)만 내세우며 음(陰)이 내쳐진 집, 현대인이 살아가는 아파트가 바로 그런 집이다.

 

안방, 거실만이 햇볕을 받고 아이들 방은 북쪽에 배치되는 평면구조, 거실이 중심에 있고 방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집에서는 행복이 깃들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은 음의 공간에 있는 방에서 고립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입재에서는 상반된 둘이 조화로운 하나가 된다.

 

 

혼돈 속의 주택지에 터를 잡다

 

단독주택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세대주택과 공동주택이 들어서면서 키 작은 단독주택이 빌딩그늘에 가려진 동네가 되어있다 

 

일반주거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단독주택만을 짓도록 고시되지 않은 지역이라면 주거지로서의 입지조건이 만족스런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토지의 가치를 부동산으로서의 수익성으로 보기에 단독주택 위주로 이루어졌던 동네에는 어디든 중소규모 공동주택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사업성 위주로 지어진 소규모 공동주택에 둘러싸인 키 낮은 단독주택들은 덩치 큰 어른들 앞에서 기가 꺾인 아이들 같아서 애처롭게 보인다. 이입재를 짓기 위한 터도 키 큰 공동주택과 상업용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초읍이라는 주거지로서의 특별한 입지조건을 포기할 수 없어 땅을 선정하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는 집짓기의 구도를 잡아나가야 했다.

 

상반된 두 가지의 수용, 이입二入

 

이입재의 현관, 수공간을 건너는 다리는 물을 건너며 정화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상과 만나는 격을 갖추는 이성적인 것으로의 이理,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하는 행行을 조화롭게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이입二入이다.

 

이입(理入), 세상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서의 물리적인 형태나 공간의 구성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형식과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삶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바깥에서 보이는 집이 가지는 격식과 형태로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한다.

 

행입(行入), 형식에 얽매이는 것에 치우친다면 집에서 누려야 하는 삶이 불편하게 담길 수 있다. 집을 짓는 목적은 가족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보여지는 딱딱한 격식으로서의 보이는 이입과 편안하게 쉴 수 있고 가족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담는 행입이 조화되는 집으로 얼개를 짜서 구성해본다.

 

 

양동마을의 관가정을 떠올리다

 

주택을 설계하게 되면서 줄곧 현대인의 집으로 이미 고착화된 아파트의 문제점을 생각해왔었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하는 사각박스, 그 안에서 분배되는 실들의 위치조정과 우선 순위로 나눠지는 방들의 배치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거실과 안방이 가장 좋은 위치를 점하고 다른 방들은 그 밖의 공간에 분산되어 위치를 잡는다. 결국 아파트는 부부의 공간이므로 다른 방들의 주인은 거실과 큰 관련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니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는 바깥으로 나돌게 되는가 보다.

 

주택을 의뢰받으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관심을 두면서 작업에 임하게 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집,

그 집의 원형을 양동마을의 관가정에다 마음으로 지목해 두었다.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여 가장은 사랑채를 중심으로 방문객을 자유롭게 만나고 안채는 사랑채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가족들의 생활이 영위된다. 관가정觀稼亭은 그 이름처럼 사랑채는 양동마을 앞에 펼쳐진 기름진 논을 바라보며 정자처럼 지어져 있다. 사랑채와 한몸이 되어 있지만 안채는 중정을 중심으로 완전하게 구분이 되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우리 식의 현대식 주택의 연원을 찾아내게 되었다. 거실을 중심으로 하는 공적인 공간을 사랑채화 시키고 침실동을 분리하여 안채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거실동은 가족 구성원의 어떤 손님이라도 기꺼이 집으로 모실 수 있으며 식구들이 불편하지 않게 자신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집이 되었다.

 

 

 관가정 사랑채와 사랑마당

 

관가정 안채와 안마당  -사진출처 : 다음블로그 내일의 어제

 

 

이입二入에서의 이理와 행行을 대지에 풀다

 

 

이입재는 다소 여유가 있는 터에 지을 수 있어서 주변의 빌딩 사이에 있어도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대지를 횡으로 가른다.

 

도로에 면한 남쪽으로 마당을 두고 북향으로 집을 앉힌다. 다시 대지를 종으로 가른다. 집을 두 채로 나누어 서향으로 공용의 공간으로 채를 쓰고 동쪽으로 침실동을 앉혔다.

 

집을 쓰는 지혜를 관가정에서 배워 여기에 옮겨왔다. 채를 둘로 나누니 거실동은 가족 모두가 함께 쓰는 공용의 공간이 되어 침실동의 사생활이 보호된다. 가족들의 손님이 누가 오더라도 침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머무를 수 있으니 언제든지 손님이 집으로 초대될 수 있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나눠진 채를 연결하니 안마당이 생긴다. 이렇게 되니 큰마당은 세상에 둘러싸이고 안마당은 집이 감싸고 있다. 큰 마당 쪽으로 거실동과 침실동이 철(凸)의 형태로 이(理)로서 당당하게 나서며 안마당은 집에 둘러싸인 요(凹)의 공간으로 편안한 일상을 담아내는 행(行)의 공간이 된다.

 

큰마당은 소나무 세 그루와 현관으로 진입하는 수공간으로 격을 부여해서 이理로서의 당당하고 멋스러운 외부공간을 표현한다. 안마당은 홀과 식당, 안방에 면해서 내외부를 시각적, 공간적으로 하나로 만들며 바닥 분수로서 삶의 이벤트를 연출하는 행行의 공간이 된다.

 

 

안마당에 설치한 바닥분수, 평상시에는 비워진 공간이지만 손님이 오면 이벤트로 분수가 솟구쳐 오른다

 

평상시의 중정은 침실동과 거실동 사이의 영역을 나누면서 차분한 빛을 공간에 담아낸다 

 

 

건축물의 내부공간은 Public space와 Private space의 두 동으로 나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입공간에 위치한 Public space는 하부에 필로티를 두어 주차장을 만드니 상부의 거실은 정자처럼 들려져 외부에서나 마당에서 보이는 집의 시각적인 주 View Target가 되어 이理로 표현한다.

 

Private space에 있는 방들은 층으로 부모자식의 공간으로 구분이 되지만 중앙홀과 중층으로 앉은 거실이 층간의 단절을 해소시킨다. 큰 마당의 소나무와 큰 공간은 외부와의 매개공간 역할을 하므로 정적인 공간이 된다.

 

중앙 홀은 Private space인 방으로 구성된 침실동과 거실동을 연결하면서 이입재만의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주는 공간이 된다. 또 큰마당과 안마당을 구획하여 내외부공간들의 음과 양의 성격을 명확히 하면서 하나로 만들어낸다.

 

 

 

계단실을 확장한 중앙홀, 2층과 트인 공간으로 연출되어 집의 깊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理와 행行으로 풀어지는 이입二入, 이입재라는 이름이 만들어지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중앙 홀은 세상과 다투어야 하는 격식으로서의 형태와 ‘집’이라는 공간이 담아내야 할 안락함을 풍부한 빛으로 담아낸다. 이 공간이 있어서 이집만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며 아이덴티티를 구현한다.

 

주도로에서는 정자로 보이는 Public space가 직선으로, 대지에 면한 도로에서는 대문의 지붕이 곡선으로 처리되면서 조화로움을 표현한다. 집 안의 외부 공간에서는 현관 진입 부분의 수공간은 건축물의 격을 보조하는 형식(理), 중정에서의 바닥 분수는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꺼리(行)으로 이입二入개념을 충족시켜본다.

 

 

이입재에서 행복을 엿보다 

 

거실 전경, 거실은 경사지붕의 형태를 따라 깊은 공간이 연출되고 지붕의 하부를 이용한 다락은 거실과 연계된 용도로 쓴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 집에서 아파트와 다른 무엇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까? 아파트는 하나에 하나만 강조된다. 음은 무시되고 양만을 존중한다. 전면에 배치된 안방과 거실, 뒷방이나 문간방처럼 놓이는 아이들의 방이 그것을 말해준다.

 

가족들이 모이면 손님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을 잃고 말았다. 손님으로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으니 가족들의 사회적인 만남이 바깥에서 이루어져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부모는 내 아이들의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고 부모들의 친구가 누구인지 아이들도 알지 못한다. 하나 밖에 없는 ‘하나’ 속에 사는 과보果報는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입재에서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층으로 구획된 침실동은 부모와 자식들의 공간이 존중되며 중층에 위치한 거실은 나눠진 층간의 단절을 이어주는 공간이 된다. 거리를 두고 있는 아이들의 방문은 닫을 필요가 없으니 방은 집 안으로 열린다. 침실동과 거실동이 채로 나눠져 있으니 가족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므로 가족들은 누구라도 집으로 손님을 모실 수가 있다. 가족들은 가까운 사람들을 즐겨 집으로 초대하니 손님이 오는 집은 활기가 넘친다.

 

지붕아래 형태가 만들어내는 경사면에는 별자리가 조도에 맞춰 LED등으로 빛을 낸다. 메인등을 끄면 별빛이 집 안에 쏟아져 내린다

 

손님이 집으로 들어오면 안마당의 분수는 물을 올리고 조명과 어우러진 이벤트가 연출된다. 이입재만의 고유한 공간이 손님들의 환호성으로 그 빛을 발하며 가족들은 우리집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 집에 사는 즐거움을 누린다. '우리집'이다.

 

 

무표정하고 혼란스러운 도심주거지에 오아시스로

 

 

집 밖에서 보이는 이입재 야경, 은은한 불빛은 집의 품격을 드러낸다

 

 

괜찮은 주거지였던 대지주변은 아직도 키 높은 공동주택만큼 단독주택들이 버티듯 힘들게 옛 주택지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독주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꼭 이렇게 있어야 한다고 항변하듯 이입재가 자리를 잡았다. 당당하다. 키만 큰 허우대로 이입재를 내려다보고 있는 주변의 높은 건물에 기죽지 않는다.

 

세상과는 당당하게 맞서지만 가족들에게는 넉넉한 품을 가지고 맞는다. 소나무 몇 그루로 로 울을 만들고 잔디 깔린 마당에서 땅을 딛고 사는 즐거움을 누린다. 정자처럼 세상을 향해 나서있는 거실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가지며 작은 연못이지만 다리를 건너 현관문을 연다.

 

 

거실 앞 데크는 마당과 이어지는 전이공간이면서 거실의 쓰임새를 확장해서 쓰게된다

 

집 건너편에 건물이 앞을 막으니 멀리 바라볼 곳이 없어 집 안에서는 하늘을 본다. 중앙 홀은 천창을 통해 하늘로 열려져 있고 거실의 천정에는 조명을 별자리로 하늘을 만들었다. 안마당에는 아늑한 둘러싸인 가족들만의 외부공간이 있고 때로는 바닥에서 분수를 올려 손님들을 맞이하는 이벤트도 가진다.

 

건물에 둘러싸인 집이기에 중정을 들여 안방도 큰 창을 열고 잠을 잘 수 있다. 누구나 마당을 가진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단독주택이기에 아무나 들어와서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기에 누구나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집 밖에서는 품격있는 외관으로, 집 안은 우리 식구들에게는  안락한 일상을 보낼 수 있으니 안팎이 조화로운 집으로 이 동네의 오아시스가 되길 바란다.

 

부산은 키 큰 빌딩이 모여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키 낮은 집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살만한 도시가 될 수 있는데 기여하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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